도서 소개
삶의 다양한 조각들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 앞의 현실을 살아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자아낸다. 서로 부딪히며 이해와 오해를 낳는다, 빛과 어둠처럼.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뿌리가 길어 올린 꽃처럼. 이야기는 존재의 허무이자 의미가 된다. 그것은 분열하는 한 몸일 수 있다. 이 복잡한 삶의 나선 위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을 고찰하도록 이끈다. 한 편의 길잡이처럼, 우리 모두의 내면을 흔드는 치열한 이야기, 바로 이 책이 그 의미와 울림을 전한다.
출판사 리뷰
『사랑받지 못한 자』는 삶의 다양한 조각들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 앞의 현실을 살아가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자아낸다. 서로 부딪히며 이해와 오해를 낳는다, 빛과 어둠처럼.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뿌리가 길어 올린 꽃처럼. 이야기는 존재의 허무이자 의미가 된다. 그것은 분열하는 한 몸일 수 있다. 이 복잡한 삶의 나선 위에서,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을 고찰하도록 이끈다.
한 편의 길잡이처럼, 우리 모두의 내면을 흔드는 치열한 이야기, 바로 이 책이 그 의미와 울림을 전한다.
사랑받지 못한 자
지금 데이트가 결혼을 위한 것일까? 이상윤은 그녀와 갖는 데이트가 연정을 키우는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가끔 회의에 빠지곤 했다.
사랑의 맹세를 다짐받는 연애출정식을 고집하였던 자신이 오히려 민망했다. 사랑받지 못한 자가 어찌 사랑을 한단 말인가.
오명숙은 단란한 가족이 있었으므로 매사에 애정을 가지고 밝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녀는 H 다방에서 3층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한 층을 왕복하는 시간이면 볼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길눈의 고유 감각도 발달해서 지하철의 노선을 불문하고 혼잡구간에서 승하차의 통로와 위치를 정확히 꿰고 최단거리로 이동하면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로서는 사람마다 생리적 특성이 다르겠지만 그녀와의 동행은 유쾌할 뿐 아니라 여간 편안하지 않았다.
귀소본능은 거리를 가다가도 발동했다. 그녀가 그에게 아파트 단지 너머로 작은 동산에 빼꼭히 들어찬 동네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저기야. 자기!”
이상윤은 감격하는 그녀를 부러운 듯 쳐다보면서 매번 가슴이 저렸다. 자신의 가족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겠다고 별러보지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이상윤은 그녀에게 오만이나 독선을 살까 겁을 내면서도 자기 존재를 ‘이야기 수집가’라는 허울 뒤에 감추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7월 첫 일요일. 오명숙은 여느 때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H다방의 아지트로 길을 나섰다. 그녀가 다소곳이 마주 앉아서 그가 급하게 냉커피를 주문하는 표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숙 씨,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그가 어색한 자세로 바싹 긴장해서 입을 열었다.
오명숙은 청천벽력 같은 발언에 귀를 의심했다. 그를 이야기 수집가라는 허울 뒤에 자기 존재를 감추려는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도 뜻밖에 튀어나온 자신의 발언에 당황하는 기색이 짙었다. 그가 다방에서 나오자 그녀를 칙사 대접한다고 택시를 세웠다. 그녀는 ‘이왕이면 미리 알려주면 좀 좋아?’라고 핀잔을 주려는데 감동의 눈물이 찔끔거렸다.
택시는 서울의 경계를 지나서 안양시로 진입하였다. 이상윤은 한시바삐 하숙집에 도착하기를 애태웠지만, 택시의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그녀를 보자 다시 고뇌의 수렁에 빠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말이다.
택시가 고가 차도를 지나서 고층 아파트의 대단지에 이르자 주택 밀집 지역이 보였다. 이상윤이 자꾸 쳐다보는 오명숙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골목 삼거리의 가게 앞에서 그가 택시를 세웠다.
그녀는 기대와 긴장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뒤를 잠자코 따라 걸어가다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
“저기 가게에서 뭘 사가야지?”
그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그녀는 성격이라고 여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가슴은 공연히 두방망이질을 쳤다.
주택 끝자락을 몇 블록 앞두고 아담한 공원이 나타나면서 그녀는 숨이 막히고 열불이 났다. 공원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가까이에 설치된 벤치가 보였다.
“더 가야 돼?”
그가 걸어가다 멈췄다. 그녀가 그의 눈치를 살피는데 서글픈 중얼거림이 들렸다.
“다 왔어, 하숙집에.”
“부모는…?”
그녀는 스스럼없이 물었다.
그의 발걸음은 비애에 잠기며 더 전진할 수 없었다. 그는 낮은 자존감마저 지키려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그를 쫓으면서 창백한 얼굴로 토라졌다. 그가 막무가내로 그녀의 손을 잡아 쥐고 터덜터덜 차도를 향해 걸었다.
택시기사는 행선지를 아는지 쌩쌩 달리는데 남녀는 차갑게 입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돌변한 사태를 생각할수록 자신이 빌미가 되었나 싶어 걱정이 깊어졌다. 그가 차창에서 고개를 돌려서 택시를 세웠다. 남녀는 안양역 근처에서 인파가 많은 보도를 따라 죽 걸으며 열기에 지치는 가운데 양복점과 마주쳤다. 그가 B양복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면서 돌연 양복점 간판을 가리키며 빙고를 외치듯 활짝 웃었다.
“이 양복점이야.”
그녀가 혼자 주절대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며 의아했다. ‘질풍처럼 도망쳐서 이게 무슨 뚱딴지일까?’
“이 양복점에서 겨울 코트를 맞췄어!”
그녀가 샐쭉하다 전후곡절을 짚어가며 위엄을 갖추고 말했다.
“태자나리께서 직접 왕림하셔서 코트를 지으신 양복점이 되겠습니다. 오늘 주말 방문은, 예 또, 태자님께서 방문은 영광이 되겠습니다.”
그녀는 잠자코 있는 그를 보면서 웃기게 큰 가방을 들고 나타났던 것은 새 발의 피였다. 그가 통쾌해서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낙조의 연인이시여! 그늘로 피하소서. 이야기 좀 할까요?”
그녀가 다정히 그의 손을 잡으며 행복해서 웃음이 커졌다.
두 사람은 행인들을 지나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플라타너스의 가로수 보호대에 기대섰다.
“거래처 사장이 잘 아는 양복점이 있다 그랬나 봐. 아버지가 나에게 코트를 맞춰주자고 생각한 것이지. 그래서 거래처 사장과 함께 갔지.”
그녀는 눈을 반쯤 떠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아버지하고 같이 가지 그랬어?”
그는 못 들은 척 넘기며 이야기에 박차를 가했다.
“사방에 색상별로 원단의 종류별로 옷감이 삐죽이 걸려있는 데다, 양복점 사장도, 거래처 사장도, 내 뒤를 졸졸 따르니 선택하기가 난감했지. 양복점 사장은 두루마리 자를 어깨에 걸치고 왼쪽 귀에 몽당연필을 꽂고서는 나를 중간에 세우고, 내가 결정한 담갈색 원단을 갖다 대었지. 두 사람은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난 그냥 내가 고른 색상으로 한다고 그랬지.”
그녀가 훈수하였다.
“그럴 땐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거야. 거래처 사장이 선택한 색상과 한 번 견주어도 손해 볼 건 없지….”
그녀가 열기의 햇볕을 막으려 손지갑으로 갓을 만들었다가 걸음을 옮기며 덧붙였다.
“태자님, 옷은 자신감의 표현이거든요. 원단만큼 색상도 중요하답니다.”
커피숍에서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에어컨 바람으로 그들의 열기는 식었고 오렌지 주스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는 하숙집의 초대를 중도에서 무산시키면서 지레 주눅이 들어서 그녀가 떠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운명의 번롱이라는 치명적인 사고에 집착한 까닭에 핏줄에 대한 증오에서 탈피하여 자신만의 독립적인 삶을 추구할 용기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명숙이 ‘언제 태자님의 겨울 코트를 알현할 수 있을까요?’ 하고 여유를 부렸을 때 그녀에게 코트를 해준 아버지를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힌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이상윤은 언제까지나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지만, 사고무친이 갖는 불우한 역경에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이 죄짓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기대하는 가족의 화목한 삶을 누릴 수 있게 그녀를 떠나보내는 게 오히려 도리 같았다.
*
이상윤이 중학교 1학년 새 학기 무렵.
애통한 시절은 끝났다고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가 밝게 웃는 모습으로 기뻐했다. 그가 막 구구단을 외우던 즈음에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비분을 한탄하며 울부짖었으니까.
“우리 새 출발이다. 새엄마는 애를 낳지 못해 쫓겨났다니까, 널 아들처럼 사랑할 거야. 분식집이 정리되는 대로 같이 살기로 했단다.”
새엄마가 살림을 도맡게 되자 가정에 행복이 덩굴 채 굴러 떨어졌다. 그녀는 이상윤을 아들처럼 아껴주며 입이 귀에 걸리도록 김밥, 떡볶이, 어묵쟁반을 요깃거리로 챙겨주었다. 아버지는 새엄마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였던 터라. 그녀는 채 1년도 되지 않아 아기를 가지며 연년생으로 아들자식을 낳는 기적을 일으켰다. 새엄마는 어린 자식들에게 모성애의 전형을 보이며 행복감을 아버지와 나누었지만, 이상윤에게는 예외적으로 두 동생에게 접근조차 금지되었다. 새엄마는 늘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난 네가 멀리 외국으로 떠난 것으로 믿고 싶구나.’
이상윤은 아버지가 새엄마를 들이면서 가진 추모식에서 어머니의 애통한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됨으로써 후회막급했다. 자식으로서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죽음의 원인도 물어보지 않았던 불효의 죄를 통감하면서 이상윤은 스스로를 사랑받지 못한 자로 낙인을 찍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손상일
부산 출생《계간 수필》 등단(2018년) 성균관대학교 무역대학원 경제학 석사관광개발회사 이사(2015년 IR사업타당성조사서)<저서>『BEYOND-진심을 넘어서서』 2023년장편소설 『사랑받지 못한 자』 2025년<취미>트레일 러닝, 참선 수행
목차
작가의 말 6
1부 인연의 고리
빨간색 잠바 12
카우보이모자 25
보따리 장사 36
삶의 통로 42
연애출정식 50
낙조의 연인 56
빗치개 66
이야기 수집가 74
아귀 85
사랑받지 못한 자 93
비상체제 100
삶의 접착제 115
대반전 124
두석장 133
2부 전문가 시대
전문가 시대 146
소명의 길 156
신장개업 163
킹콩찜 172
과거의 그림자 186
부평초 195
결정결핍증 200
스펙트럼 211
오후의 열기 231
거룩한 만남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