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식민지 조선의 일상적 굴욕과 폭력에
함께 저항한 외국인들
광복 80주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그들의 삶과 신념식민의 땅에서 자행되던 일상적 폭력과 모욕! 때로는 비폭력으로, 때로는 전략적인 투쟁으로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에 항거했다. 암울했던 30여 년의 일상을 버텨내며 싸운 끝에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고,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부 독립운동가들에게만 주목해 왔다. 하지만,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외국인 독립운동가 15인의 삶을 따라가며, 왜 그들에게도 조선의 독립이 중요한 과제였는지 깊이 있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헌신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식민지 한국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과 그들의 활동을 연결하여 독립운동사를 세 부분으로 조망한다.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노력(1876~1910)에서부터 식민지 조선을 지키려는 용기(1902~1935),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정의로운 연대(1907~1945)의 움직임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외국인들이 조선 독립에 어떻게 참여하고 연대했는지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주목받지 못했던 기억’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역사
100여 년 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우리를 밝혔다면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그들을 세상에 드러낸다!광복 80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그동안 해마다 ‘조선 독립의 의미’를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한 삶과 헌신 속에서 되새겨 왔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조국의 해방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 그들의 일생은, 한 민족이 자유와 의지로 본연의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이제 대중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활동, 그리고 독립운동 전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100여 년 전 어둠 속의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고도 주목받지 못한, 뜻밖의 인물들이 있다. 광복 80주년, 비로소 우리는《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을 통해 그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왜 잘 몰랐었나?
His + story우리는 왜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역사의 서사를 누가 독점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기록되는 역사는 언제나 권력이 선택하고 구성한 방식에 따라 서술된다. 이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 식민지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늘 주류 서사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를 다루는 시각 역시 이러한 서사 권력의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해 왔으며, 그 결과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설령 그들이 서양의 백인 남성이었을지라도 우리의 기억 한가운데로 들어오지 못하고, 역사의 외곽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다. 조선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당연함’에 가려, 진정한 ‘연대’의 서사를 놓쳐왔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기억들을 능동적으로 복원해야 할 시점이다. 국적과 성별을 넘어, 낯선 땅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제국주의의 화염 속으로 스스로를 던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방인의 투쟁’이 아니라, 개인의 용기이자 인류적 연대의 증거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왜 싸웠는가를 다시 묻고, 그 질문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세계시민성의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인류적 연대란 무엇인가? 그 의미는 곧 세계시민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삶의 기반도 서로 달랐던 이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선 연대의식, 즉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와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은 바로 그들이 남긴 용기와 연대의 흔적들을 다시 꺼내어, 오랫동안 귀 기울이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오늘 우리가 새롭게 말해야 할 이야기로 되살려 내고 있다.
왜 알아야 하나?
세계시민(성)그렇다면 세계시민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나는 아테네시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다”라는 선언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시민성은 더 이상 철학적 사유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적 위기와 상호의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체득해야 할 시민의식이 되었다. 세계시민성이란 특정 국가나 민족에 국한된 정체성을 넘어, 인류 공동의 책임과 연대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이는 정치적·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나의 나라’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전쟁, 차별, 억압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산업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조적 폭력과 배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80여 년 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준 선택과 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은 지난날 세계시민의 모습을 행동으로 말해왔다.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대답을 위해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조명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결코 한반도라는 지리적 경계에 머물지 않았다. 해외 각지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의 이면에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세계인의 연대와 참여가 있었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의 해방이 단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서는 세계평화 운동의 일환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낯선 땅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던졌고, 인류애에 기반한 세계시민의 자세를 직접 증명해 보였다.《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에서는 15인의 세계시민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올리버 R. 에이비슨 (어비신 魚丕信) / 로버트 D. 스토리 / 프레더릭 A. 매켄지 / 호머 B. 헐버트 (허흘법 許訖法)/프랭크 W. 스코필드 (석호필 石虎弼) / 황줴 / 로버트 G. 그리어슨 (구례선 具禮善) / 루이 마랭 / 추푸청 / 조지 S. 맥큔 (윤산온 尹山溫)조지 L. 쇼 / 후세 다쓰지 / 가네코 후미코 (박문자 朴文子) / 조지 A. 피치 (비오생 費吾生) / 두쥔훼이
《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외국인 15인을 통해, 국경과 언어,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실천적 연대의 실존을 조명한다. 의사, 교육자, 언론인, 그리고 혁명가로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응답했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며 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선택은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 단지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태도임을 증명한다.
그들이 보여준 연대는 일회성 동정이나 박애주의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 연대는 당시 국제 질서를 규정하던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도덕적 문제제기였으며, 한 사회의 고통을 인류 전체의 문제로 인식한 보편 윤리의 실천이었다. 그들은 타인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고, 모국의 이익과 무관한 싸움에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 그 결단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인간으로서’ 선택한 길이었다.
이들의 흔적은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이 남긴 태도와 가치관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전쟁, 차별, 혐오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제, 조선을 도운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정의와 연대를 향한 인간 보편의 실천자로서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프레더릭 A. 매켄지_ 2. 《대한제국의 비극》으로 주권 침해를 증언한 저널리스트
바짓가랑이 속에 숨겨 전달된 편지1월, 스토리는 일본 고베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트리뷴》의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이다. 《트리뷴》은 1906년 1월 15일, 런던에서 창간된 신문으로, 볼턴 지방 방직업자의 상속자이자 자유당 소속의 젊은 국회의원 프랭클린 토머슨(Franklin Thomasson)이 소유주였다. 이 신문은 고급지를 지향하며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08년 2월 8일, 창간 2년 만에 폐간되고 만다.
대한제국에 온 스토리는 고종과 접촉할 수 있는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 마침내 고종과 연락이 닿았다. 스토리는, 당시 궁궐 안팎은 일본의 감시가 심했고 첩자가 득실거렸기 때문에 고종은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신하들조차 일본 병사들에게 대궐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고 회고했다.
스토리가 처음 고종 측으로부터 받은 교서(敎書)의 내용은, 일본의 위협 아래 고종 본인이 암살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교서를 접한 뒤, 스토리는 자신이 기존에 의존하던 정보 통로 대신, 오로지고종의 교서만을 믿기로 했다. 대한제국 상황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비밀리에 전달되는 고종의 편지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스토리는 밤마다 숙소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궁중에서 고종의 신임을 받는 인물들은, 바짓가랑이 속에 편지를 숨겨 몰래 전달하곤 했다. 이런 극도의 경계와 긴장감 속에서, 1월 어느 날 새벽 4시, 고종의 붉은 옥새가 찍힌 밀서가 스토리에게 전달되었다.
고종이 그를 어떻게 믿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스토리가 긴 여정 끝에 결국 고종과 직접 소통하는 경로를 확보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스토리는 직접 고종의 밀서를 받아, 일본의 감시망을 뚫고 대한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고종 황제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밀서는 총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을사조약’을 부정하는 고종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밀서를 받은 밤, 스토리는 미국 총영사와 함께 무사히 서울을 탈출했다.
황줴_ 6. 한·중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한 항일운동가
조소앙·김상옥과도 교류황줴는 구국단 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조직했던 신아동맹당을 중국에서도 이어나갔다. 1920년 1월 신아동맹당을 개조하여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했다. 대동당은 민족평등, 국가평등, 인류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삼평주의(三平主義)를 채택했다. 대동당에는 장멍주(張夢九)·쉬더헝(許德珩)·저우핑칭(周平卿) 등 중국인을 비롯하여 조선인, 인도인, 일본인, 러시아인 등 3,00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박진순(朴鎭淳)을 매개로 한인사회당(상하이파)의 지도자인 이동휘, 김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김규식, 여운형, 윤현진, 김철 등 상하이의 조선인 유력자들도대동당에 참여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동당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사업으로 여겼다. 이처럼 황줴는 꾸준히 동아시아 연대에 기반한 혁명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이처럼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황줴의 관심과 지지는 꾸준했다. 특히 상하이서 열린 3·1운동 기념식에 자주 참석했다. 확인된 참석만도 1925년, 1928년, 1930년
으로 세 번인데, 주로 한·중 연대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또한 조소앙과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소앙이 종로경찰서투탄의거를 거행한 의열단원 김상옥의 평전을 1925년 상하이에서 출판할 때, 황줴는 김상옥의 뜻을 기리는 중국인들의 조사(弔詞)와 만사(輓詞) 부분의 서문을 썼다. 김상옥의 의거 전에 조소앙이 김상옥을 황줴에게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처럼 황줴는 다양한 계열의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혜린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성균관대에서 상하이 프랑스 조계 당국의 한인 정책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망명, 이주, 난민 등 국경을 넘은 이들의 삶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독립운동가 김석의 체포와 이중 국적 문제를 살펴본 <재상해 한인의 국적문제와 중국, 일본, 프랑스의 대응: 1933-1934년 김석의 사례를 중심으로>(《역사연구》 50, 2024), 상하이 프랑스 조계 당국이 작성한 ‘월간보고서’를 분석한 <1920년대 중반 상해 프랑스 조계 당국이 작성한 ‘월간보고서’의 내용과 의미>(《사학연구》 156, 2024)가 있다. 공저로는 김구 서거 70주기를 맞아 기획된 《백범의 길: 임시정부의 중국 노정을 밟다 – 상》(arte, 2019)이 있다.
지은이 : 김영진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1920년대 중반 정우회선언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정치사상사를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근대사상의 수용과 전유 방식이 사회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찬조광고를 통해 지역 내 인적 네트워크 분석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1962년 독립유공자 포상 과정 및 명단을 분석한 <독립유공자 포상과 역사인식: 1958년과 1962년 독립유공자 포상 명단 분석>(《사림》 75, 2021), 지역찬조광고를 활용하여 지역정치의 역학관계를 분석한 <『조선지광』 지역찬조광고로 본 원산지역 사회운동과 지역사회>(《역사연구》 52, 2025) 등이 있다. 공저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재력가》(경기문화재단, 2018),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문서와 식민지 사회》(국사편찬위원회, 2022), 《일제강점기 국내 민족주의·사회주의운동 탄압사》(동북아역사재단, 2022) 등이 있다.
지은이 : 남기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한국병합’ 전후 토지 소유관계와 이 시기, 새롭게 제정된 법률과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 박물관 학예사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토지조사사업: 식민지 지배의 기반》(동북아역사재단, 2025), 《3·1운동과 경기, 인천지역》(경인문화사, 2019, 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공공역사가의 협력으로 만드는 지역 근현대사 교육>(《역사비평》 151, 2025), <일제시기 토지소유권 확립을 둘러싼 사법적 분쟁의 해소 – 김성윤과 도요타 후쿠타로의 소송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 122, 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