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925년 9월, 아도르노는 22세 생일 직전에 친구 크라카우어와 함께 나폴리를 여행하면서 비순응주의자, 자기중심주의자, 몽상가, 혁명가 등이 다채롭게 섞여 있는 무리들과 만났다. 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대로 나폴리 만(灣)의 한 부분으로 배양되고 있었다. 혁명적 성향으로 들끓는 이 격동적 풍경은 나폴리의 대기에 의해 점화된 사상가 그룹에게 스며들었고, 아도르노는 그 중심에 있었다. 이 혁명적 불꽃은 하나의 질문을 낳았다. 나폴리의 취기 가득한 분위기, 죽음 숭배, 그리고 활기찬 생명력을 새로운 철학으로 옮길 수는 없을까?
아도르노와 벤야민의 친구들은 나폴리 만과 아말피 해변에서 아직 현대화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은 삶을 비추는 마지막 햇살에 몸을 담그고, 현대의 경직성에서 벗어난 다공성의 풍경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들의 글에는 현대화에 저항하는 무절제한 나폴리의 모습이 유쾌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래된 당나귀 수레는 교통을 방해했고, 기계들은 늘 고장 나 있었다. 북유럽에서 고도 산업화된 세계를 충분히 접했던 이들은 아직 현대화되지 않은 나폴리식 삶과 ‘오래된 관습’을 좋아했다. 그들은 베수비오 화산 정상과 연결된 케이블카를 마다하고 말을 타거나 걸어서 산에 올랐다.
존-레텔은 이 마을의 유령과 이미 친숙해진 상태였다. 그는 거기서 마르크스의 『자본』 첫 장에 언급된 유령과 계속 조우했다. 상품의 물신성을 다룬 이 절에 따르면, 모든 생산품의 교환가능성 원리는 ‘마술과 강령술’이라는 ‘환영의 형태’로 귀결되며, 상품에 투입된 인간 노동은 자연적 속성으로 이 형태 속에 다시 반영된다. “인간 두뇌의 생산물들은 자기 고유의 생을 부여받은 자율적인 실체인 것처럼 행동하며, 그럼으로써 서로 관계를 맺거나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존-레텔의 나폴리 체험은 극도로 과잉된 마르크스적 유령 가운데 하나와 씨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마르틴 미텔마이어
쾰른대학교 독일어문학연구소 명예교수. 독일 유명 출판사에서 편집자 겸 기획 책임자로 오랜 기간 일했으며, 현재 쾰른에서 작가 및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독일과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들을 지성사 또는 지식사회학적 측면에서 조명하는 저술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토마스 만의 캘리포니아 망명 기간을 다룬 최근작 『낙원의 향수』(2025)를 비롯하여 『다다: 세기의 이야기』(2016), 『자유와 어둠: ‘계몽의 변증법’은 어떻게 세기의 책이 되었나』(2021)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