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자리가 필요한—동물원 킨트라고 주장하는—한 사람의, 말하자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작성된 지원서의 형태를 하고 있다. 즉 동물원의 모니터링 서류 양식”이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작중 화자는 동물원의 직원이 되고 싶어한다. 도시만의 풍경인 동물원에 매혹된 ‘나’는 특히 한겨울과 비 내리는 날의 동물원 풍경을 사랑한다. 소설은 화자가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얘기로 전개된다.
출판사 리뷰
가장 이채롭고 가장 독특하며 가장 순정한, 오직 배수아
“배수아는 하나뿐이다”
“배수아의 소설에는 상투적인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배수아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 상황, 대사, 통찰은 오직 배수아의 소설에만 나온다. 그래서 배수아는 하나뿐이다”(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마음산책, 2018)
배수아의 텍스트는 낯설고 불안하고 불온하며 이질적이고 불길해서 오히려 쉽게 매혹당하고, 얼핏 그 독보적인 스타일만을 이야기하기 쉽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만큼 예민하고 섬세하게 한 인간의 내면을 끄집어내 보일 수 있을까 갸웃거리게 만든다.
꽤 긴 시간 절판되었다가 새롭게 출간된 그의 네 작품에는(『철수(1998)』, 『이바나(2002)』, 『동물원 킨트(2002)』, 『독학자(2004)』 이러한 작가의 매력이 그대로 녹아 있는데다, 2025년 현재의 ‘배수아’라는 텍스트를 떠올릴 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 시절의 저 낯섦은 지금도 여전히 한없이새롭고, 작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지금의 배수아와 겹쳐진다.
다시 한번,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저 ‘단언’은 작가가 등단한 지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뿐더러, 오늘에 이르러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풍경의 일부가 되었어.”
나는 내가 단지 하나의 풍경이며, 그것을 완성시키는 일종의 정물이며, 단지 그것을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행복했어. 혹독한 바람, 낮은 밀도의 대기, 아직 채 끝나지 않은 살풍경한 겨울에 찾아온 단 한 명의 여행자, 그리고 내가 발견한 양 동물원. 감동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 (…) 나는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 _131p
“안녕.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너와 절교하기를 원해.”
고립이란 정말 멋진 것이다. 그것은 거의 쾌락의 차원이다. 그것을 찬미한다.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진정 고립을 모르거나 혹은 나약하게 겁을 먹은 것이다. (…) 글을 쓸 때 내가 선호하는 몇 가지 사소한 방법이 있는데, 동일시하거나 비판하거나 개입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가능한 한 이런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고립이란 그것과 비슷하다. 고립이란 반드시 혼자 지낸다거나 배타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고립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은 그런 식으로 고립된 정신의 한 종류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절교의 편지를 쓰고 있다. 혹은 개의치 않는다. 스스로 사물이나 장소가 되기를 원한다. 고립이 이 글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이 작품은, 일자리가 필요한—동물원 킨트라고 주장하는—한 사람의, 말하자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작성된 지원서의 형태를 하고 있다. 즉 동물원의 모니터링 서류 양식”이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작중 화자는 동물원의 직원이 되고 싶어한다. 도시만의 풍경인 동물원에 매혹된 ‘나’는 특히 한겨울과 비 내리는 날의 동물원 풍경을 사랑한다. 소설은 화자가 동물원을 어슬렁거리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얘기로 전개된다.
‘작가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동물원’은 ‘고립’의 다른 이름이다. ‘동물원 킨트’는 고립을 찾아 떠났으며, 고립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으며, 마침내 충만한 고립을 얻었다. 완전하게 홀로 된 뒤에야 ‘나’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하마’를 만날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나’는 하마에게 ‘동물원 놀이’를 알려 준다. 그것은 작가가 낯선 나라에서 잠시 잠깐 즐겼던 ‘이방인 놀이’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당신 역시 언제라도, 충분히 동물원 킨트가 될 수 있다.
동물원 킨트는 단지 계속해서 길을 걸어. (…) 동물원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다가, 그들은 갑자기 알게 돼. 그는 동물원 킨트였던 거야. (…) 동물원에 가기 위해 다른 것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리고 이미 그렇게 했다면, 그리고 어떤 여행지에서라도 가장 먼저 그 도시의 동물원을 찾아간다면, 또한 동물원을 혼자 찾아갈 때가 가장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이미 동물원 킨트야._15p
작가에게 동물원은 사막에 있는 동물원도 아니고 그가 작품을 쓰면서 머물렀던 독일 어느 도시의 동물원도 아니며,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생애 최초의 동물원이거나 혹은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동물원도 아니다. 그것은 동물원이며 동시에 동물원이 아니고, 모든 구체적인 것들에 반하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혹은 정서적 경험에 의해 부여된 토템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장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사람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태어난 병원이나 고향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야.
연착되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가끔 들어올 뿐인 그런 동물원을 나는 찾고 싶어. 혼자서 하루 종일 어슬렁거리거나 하마 수족관 앞 벤치에 하염없이 앉아 있어도 시선이 신경쓰이지 않는 그런 동물원 말이야. 풍선이나 아이스크림 따위는 팔지 않는 동물원. 지도를 펼쳐놓으면, 세상의 그 많은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원. 떠들썩하지 않은 개인 동물원. 내가 아직 만나지 못했고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동물원. 그런 동물원을 만나게 되거나, 갖고 싶어.
이곳에서 고향은 두려움의 대상이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져버린다, 그런 식의 문장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고향이야. 물론 절대로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지.
작가 소개
지은이 : 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 1993년 『소설과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올빼미의 없음』 『뱀과 물』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작별들 순간들』 『속삭임 우묵한 정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 『꿈』, W. 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 『자연을 따라. 기초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달걀과 닭』 『G.H.에 따른 수난』, 아글라야 페터라니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 등이 있다. 2024년 김유정문학상, 2018년 오늘의작가상, 2004년 동서문학상,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동물원 킨트 9
짐승의 눈 19
하마 29
보도의 상점 40
두스만 55
카챠의 남자 68
겨울의 유령들 79
1945년 4월 16일의 벙커 89
러시아 호프 호텔 111
양 동물원 127
새로운 슈테피 134
모든 친구에게 쓴 절교의 편지 145
West Berlin 155
부다페스트 가街 166
작가의 말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