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어머니의 콩 심기는 신기했다. ‘쿵’ 찍고 ‘다릉’ 하며 뒤꿈치 확에 콩을 넣고 덮는 것이 ‘쿵 다릉 쿵 다릉’ 가락이 되었다. 절로 흥에 겨운 듯 팔과 다리와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은 신명난 춤이었다. 치마꼬리에 휘파람 소리가 나도록 온몸을 다해 싸이의 말 춤처럼 콩 춤을 연출했다. 이랑 따라 굽이를 돌아가는 어머니의 뒤꿈치 확에 콩과 함께 콩꼬투리 같은 자식들을 희망의 씨앗으로 꼭꼭 숨겼을 것이다. 어머니의 콩 심기는 깊지도 얕지도, 드물거나 달거나 하지 않고 자로 잰 것처럼 간격이 일정했다. 콩이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면서 어머니가 콩 심는 것을 유심히 본 것도 그 즈음으로 기억된다.
-<어머니의 콩밭> 중에서
여북하면 하품할 새도 없다고 할까. 일 귀신에 발목이 잡혀 밤이면 녹초가 되어 죽었다가 새벽에 부활해서 하루를 맞이한다. 자명종 대신 자연의 소리에 눈을 뜨면 마당으로 나온다. 날이 새기 전 고요 속의 새벽 공기는 상쾌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언젠가부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푸시킨의 시를 읊조리며 새 힘을 얻는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중에서
“부유한 자도 비천한 자도 삶의 끝은 태어날 때처럼 동일하다. 주검을 대하면서도 혐오감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가난한 이에게는 다시 태어날 때는 오복을 갖추어 환생하라.”고 기도하셨다는 아버님.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짚불처럼 사라진 생명을 묵묵히 거두시던 생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더없이 존경스럽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했다. 그들에게서 마을의 역사와 수많은 경험과 삶의 지혜를 습득한다는 의미이리라. 어떤 책과도 바꿀 수 없는,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로 인근 마을을 두루 섭렵하며 길흉사 봉사를 하시던 아버님을 감히 박물관이라 이름 짓고 싶다. 세대가 변해 정작 당신은 아흔일곱에 장례식장에서 전문 염습사의 손을 빌려 먼 길 떠나셨다. 지역에 박물관 하나 사라졌다.
-<염습사>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권순옥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속칭(한실)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잠시 고향을 떠났다가 귀향해서 30여 년 오이 농사를 짓고 있다. 1992년 MBC 라디오 <여성시대> ‘한여름 편지 쇼’ 대상, 1993년 ENEX ‘주부가 쓰는 부엌 이야기’ 공모 동상과 ‘전국주부편지쓰기대회’ 장려상을 수상했다. 2011년《에세이문학》봄호에 <점박이>로 초회 추천, 2013년《에세이문학》여름호에 <어머니의 콩밭>으로 완료 추천을 받았다. 2020년《The 수필 2020 빛나는 수필가 60》에 선정, 2025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활동준비금 수혜자에 선정되었다. (사)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사)한국문인협회 칠곡지부 수필분과장, 수필미학작가회와 스터디그룹 이목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6년 수필집《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