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최상경 시인의 시집 『그냥 바람이면 돼』를 읽고 나면, 그리움이란 말이 오래 입안에 남는다. 이 시집에서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의 회고에 그치지 않고, 그것은 오늘의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손길이며, 사라진 것들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는 희미한 기척이다. 시인은 밤하늘의 달, 시장의 생선, 식탁 위의 사과, 요양원 복도, 빈집의 마당, 바닷가의 바람 같은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 시집의 세계는 이런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깊이를 획득하는 순간들의 기록이다.
첫 시 「밤이면 달섬이 날 기다린다」에서부터 그리움의 정조는 선명하다. “가끔 그리움에 목메면” 대낮에도 창백한 얼굴로 떠오르는 달섬은, 밤이 되면 기다림의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멀거나 가깝거나, 깊거나 얕거나, 그 섬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섬은 섬이 되고, 아침이면 화자 또한 “다시 섬”이 된다. 이처럼 최상경의 시에서 그리움은 대상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리워하는 사람 자신의 존재 방식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하나의 섬이 된다.
출판사 리뷰
최상경 시인의 시집 『그냥 바람이면 돼』를 읽고 나면, 그리움이란 말이 오래 입안에 남는다. 이 시집에서 그리움은 지나간 시간의 회고에 그치지 않고, 그것은 오늘의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손길이며, 사라진 것들이 아직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음을 알려주는 희미한 기척이다. 시인은 밤하늘의 달, 시장의 생선, 식탁 위의 사과, 요양원 복도, 빈집의 마당, 바닷가의 바람 같은 사소한 장면들 속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낸다. 이 시집의 세계는 이런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깊이를 획득하는 순간들의 기록이다.
첫 시 「밤이면 달섬이 날 기다린다」에서부터 그리움의 정조는 선명하다. “가끔 그리움에 목메면” 대낮에도 창백한 얼굴로 떠오르는 달섬은, 밤이 되면 기다림의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멀거나 가깝거나, 깊거나 얕거나, 그 섬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섬은 섬이 되고, 아침이면 화자 또한 “다시 섬”이 된다. 이처럼 최상경의 시에서 그리움은 대상에게만 머물지 않고, 그리워하는 사람 자신의 존재 방식이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어느새 하나의 섬이 된다.
이 시집의 그리움은 일상 속에서 자주 확인된다. 「중력」의 식탁 위 사과는 “걷다가 서고 서다가 걷고 밀고 당기는 그리움”을 불러내는 매개체이다. 「점심點心 할까요」에서는 밥 한 끼가 허기를 채우는 일을 넘어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 일이 된다. 배가 고픈 것보다 “그리움이 고픈” 시간이 있다는 깨달음은, 일상의 가장 평범한 행위 속에 삶의 결핍과 애틋함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 식탁, 우편함, 병실, 여행지 같은 장소들은 시인에게 그리움이 묻어나는 생활의 증거들이다.
어머니를 향한 마음 역시 그리움의 한 축을 이룬다. 「407호 병실」의 병실 풍경, 「집안의 시계」의 요양원 복도, 「마음도 아프면 파스 붙일까요」의 파스 한 장, 「요양원의 봄」의 꽃과 어머니는 모두 노년과 돌봄,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태어난 시들이다. 특히 「집안의 시계」에서 어머니가 화자의 이름을 한참 만에 부르는 장면은, 시간이 한순간 멈추거나 빼앗기는 듯한 아픔을 준다. 달력은 넘어가도 마음은 어제에 머물고, 시인은 자신이 먼저 잊을까 봐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른다. 여기서 그리움은 아직 곁에 있으나 조금씩 멀어지는 존재를 붙드는 간절한 방식이다.
또한, 시인은 그리움을 개인적 감상에만 가두지 않는다. 「희나리」에서는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은 채 마르지 않은 장작처럼 축축한 한으로 남는다. 「한강恨江」과 「거창한 가을」 같은 작품들에서는 역사적 상처와 공동체의 슬픔이 개인의 감각 속으로 스며든다. 최상경의 시에서 그리움은 사적인 정서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잊을 수 없는 이름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말하지 못한 울음이 시의 밑바닥에서 계속 바람처럼 분다. 그래서 그의 그리움은 연약하지 않다. 상처를 증언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표제작 「바람이면 돼」는 이 시집의 정서를 가장 잘 압축해 보여준다. “너의 바람이면 돼”, “그냥 바람이면 돼”라는 말은 체념처럼 들리기도 하고, 사랑의 가장 낮은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보다, 다만 누군가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이며, 그것은 붙잡지 않으면서도 끝내 떠나보내지 못하는 그리움의 태도다. 바람은 머물지 않지만 흔적을 남긴다. 이 시집의 시들도 그렇다. 읽고 나면 사라지는 듯하지만, 어느새 마음 한쪽에 오래 서늘하고 따뜻한 결을 남긴다.
해설 중에서
시집을 열자마자, 첫 시에서부터 바다 냄새를 품은 밤이 짙게 펼쳐졌다. 섬을 둘러싼 밤바다의 파도 소리와 함께 “검은 밤하늘”(밤이면 달섬이 날 기다린다)에 “어두워야 빛나는 뭇별”이 독자들의 수평선 위로 마중을 나왔다. 시적 심상으로써 섬은 그 자체가 ‘관계의 목마름’을 내포한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과는 철저히 이질적이었을 “대낮에도 창백한 얼굴”이 곳곳을 서성거렸을 것 같다. 이방인의 심정이었을까.
시인 최상경의 밤은 ‘한 권의 시집’처럼 우리 앞에서 다시금 온몸으로 마주해야 할 시공간으로 펼쳐진다. 빗나간 시선의 그늘진 사각지대, 결코 눈으로만 볼 수 없는 검은 바닷속, 그리고 누군가의 닳아진 얼굴, 거기에 멍울처럼 엉킨 울음과 아픔을 진정 인간으로서 느끼고 싶다면 그냥 몸으로 다가가면 된다. _ 정재훈(문학평론가)
하얀 종이에
새까맣게 채워지는 부끄러움
심장마저 까맣게 타오른다
-「소지燒紙」 부분
누군가의 봄이 된다는 것은
안과 밖을 통째로 내주는 것
미처 고백하지도 못했는데
금세 네 봄이 지고 말았어
-「누군가의 봄으로」 부분
바다로 간 바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주머니 속에 구겨진 바다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그곳 심해어가 되었는지도 모르지
-「거저 오지 않는 봄」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상경
전남 고흥 출생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순천효산고등학교 교장 역임(2018~2021)대한예수교장로회 순천북부교회 장로(2013~현재)문학동우회 <시우림> 회장전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2025년) 시집 『네모 속에 들어온 달』(2025년) 『만약 네가 내게로 온다면』(2025년) 『그냥 바람이면 돼』(2026년)순천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2026년)
목차
1부 나무에 달린 붉은 언약
소지燒紙/ 밤이면 달섬이 날 기다린다/ 돌아오는 숫자/ 향수 마일리지/
이젠, 내가 설렐 차롄가보다/ 광야로 간 달팽이/ 낙엽, 어디로 가시려는지/ 환승역/
밤을 삼킨 달/ 비상시국非常時局/ 좀 더 기다릴걸/ 거창한 가을/ 누군가의 봄으로/
거저 오지 않는 봄/ 407호 병실/ 중력/ 가을 여행/ 그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2부 빛에 파묻힌 그림자가 집을 짓고
행간行間/ 정녕/ 호접지몽胡蝶之夢/ 속주머니로 들어온 너/ 언제쯤 환복換服할까요/
뭍으로 나온 바다/ 결핍이 된 상실/ 이 봄을 어떻게 할까/ 궤적/ 점심點心 할까요/
단지, 사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목에 걸린 종이달/ 콰트로/ 내 쉼표는 어디에서 쉴까/
메소테스/ 플랫폼/ 페른베/ 고독 사세요/
3부 찬 바람결에 꽃잎 내맡기든지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간다/ 잠시라는 기억/ 벽을 두드리며 그가 온다/ 새벽은 울지 않는다/
아직, 흐르지 못한 눈물방울/ 희나리/ 울음 속의 섬/ 어떤 기억은 기록보다 진하다/
자각몽自覺夢/ 이소/ 길 위의 피아노/ 바람이면 돼/ 머리 위로 날아간 새/ 오는 길/
빈집/ 우수/ 집안의 시계/ 에이아이 청문회
4부 바다는 달月을 어디에 감추었는지
어머니의 지우개/ 기다리는 손/ 아마도, 그녀는 인공 콩깍지를 했을 거야/ 한강恨江/ 불갑산 꽃무릇/
바다의 고적孤寂/ 서랍을 열어 봐/ 달이 발을 헛디뎌/ 어떤 밤은 끝이 보이지 않아/ 얼음새꽃/
두고 간 인사/ 멍에/ 한 점/ 겨울꽃/ 마음도 아프면 파스 붙일까요/ 지난가을을 이제야 만나고/ 요양원의 봄/ 이름이 오는 밤/ 상처를 보듬는 상처
해설 _ 그냥 몸으로 느끼면 된다
정재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