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것은 이야기 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부수면서
이 염세적이고 위기적인 세계에 사랑을 부활시키는 이야기
세계를 전복하는 총천연색의 상상력, 권혜영 첫 장편소설
‘회빙환’ 시대의 고전이 될 이야기 고전과 서브컬처를 망라하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쥐락펴락하며, 작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독자를 ‘순애’의 세계로 이끄는 권혜영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 시리즈N을 통해 출판되었다. 고전 영화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를 오마주한 제목을 당당히 짊어진 이 소설은 ‘부활’과 ‘사랑’을 같은 위치에 두며, 파편적이고 자극적인 사랑에 노출된 현대사회에서 ‘진짜 사랑’의 부활을 말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권혜영이 선택하는 길은 독특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과로사 후 성인 웹툰 속 인물에 빙의된 30대 직장인 여성과, 먹고 살기 위해 그 성인 웹툰을 그리고 있는 여성 만화가이다. 육체적 사랑이 난무하는 웹툰 속과, 삶의 목표에 대한 사랑이 모두 식어버린 현실이 소설을 통해 교차한다. 두 인물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애쓰지만 마주하는 상황은 늘 ‘19금’, 위험과 위기이다. 두 인물은 세계의 경계를 부수며 이 염세적이고 위기적인 세계에 ‘사랑’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
“‘회빙환’(회귀물, 빙의물, 환생물 장르를 묶어 칭하는 말) 시대의 고전이 될 작품”이라는 소설가 박서련의 추천사처럼, 이 소설은 회빙환 장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과 특성을 영리하게 이용하면서도 전개 방식을 교묘하게 비튼다. 주인공은 ‘내가 주인공이 아닌 오피스 하렘물’의 일원이 된다. 과로사한 인물에게 다시 회사원의 삶이 주어지고 원한 적 없는 사랑의 관계자가 된다. 우리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문자 그대로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는 것을 암시하듯. 하지만 웹툰 밖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며 소설은 또 다른 전개를 암시한다. 마치 연재 중단된 웹툰처럼 멈춰진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주며 소설은 죽었다 깨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부활의 자리를, 사랑의 자리를 마련한다. 장르적 특성을 꿰고 돌파하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창작물과 창작자의 교류, 만화학교 동기의 등장과 만화에 대한 애정 등에서 최근 큰 인기를 얻었던 후지모토 타츠키의 <룩 백>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늦게 도착한 위로로 이야기를 끝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창작물의 안과 밖을 접붙이며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것을 눈앞으로 데려온다. 사랑이 넘쳐나는 관음증적 성인 웹툰 속 세계에서 이누리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삶, 발암 물질이 나오는 생활용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과로로 죽었던 자기 자신의 삶을 다시 살피고 돌본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발명해야 할 사랑, 바로 자신을 마주하는 사랑의 단계를 이야기 속 이야기를 통해 돌파한다. 한편 자신이 사랑한 것이 자신을 아프게 하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사랑할 힘이 남지 않은 세계에서 한소연은 타인의 사랑을 살피기 시작한다. 여전히 만화의 세계에서 애쓰고 있는 친구와, 아무런 흔적이 없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진짜 독자를 만나고, 각자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 힘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결국 두 인물은 각자의 세계가 경계 너머로 확장되고 접붙여지는 경험에 다다른다. 소설은 이렇게 작지만 분명한 생의 의지를 대면하고, 나와 내 곁의 존재를 위한 확실한 사랑을 회복하게 만든다. 삶에 찔리는 순간에도 삶을 힘껏 끌어안게 만든다. 그것이 순애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려주면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는 강령은 우리가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점. 그렇게 소설은 이곳에 다시 사랑을 소환한다.
“특히 ‘심야 근무’라는 단어에서 가슴이 철렁했다.
알다시피 나는 심야 근무를 하다가 죽은 사람이지 않은가”소설의 주인공은 성인 웹툰 속 인물에 빙의된 30대의 직장인 여성. 그녀는 심야 근무 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남성 주인공을 여러 명의 여성이 좋아하고 관계 맺는 이른 바 ‘하렘물’ 웹툰 속 한 여성 ‘이누리’에게 빙의하게 된다. 회사 안에서 온갖 성관계가 벌어지고 모든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을 위해 복무하는 성인 웹툰의 전개를 피해 주인공은 이누리의 인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만화의 장르는 절대 이세계 회귀물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윤지훈이 주인공인 세계. 19금 성인 오피스 하렘물이다.
(……)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아. 한 번도 욕심 부린 적 없잖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라면서 객기 부린 적도 없었다. 단지 이 사회의 평범한 일원이 된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았건만. 하렘의 일원만은 싫다. 이곳이 진짜 하렘 지옥이라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탈출해야 한다.
―본문 31~32쪽
한편 이 성인 웹툰, 《심야 근무의 사정》을 그리는 만화가 한소연은 만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만화에 열심이었지만, 첫 작품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결국 생계를 위해 양산형 성인 웹툰 사업에 뛰어들게 된 만화가다. 그는 매일매일 성인 웹툰의 온갖 장면들을 생각하고 인물들이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성관계를 맺는 스토리를 생각하다가 번아웃에 이른다. 간신히 연재를 중단한 그는 일본 만화학교 시절의 친구였던 히카루의 조모상 소식을 듣게 되고, 히카루의 조모가 그에게 남겼다는 유산을 대신 전달해주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각자가 떠맡은 일이 결국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셈이다.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 앞에서는 번번이 어긋나버린다.
히카루 앞으로 남겨진 외할머니의 유품이 있다고 했다. 마감은 무사히 넘겼지만 바로 다음 주가 또 마감이었다. 담당자와 콘티 회의를 앞두고 있어 그는 그것을 받으러 한국에 오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소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자신이 대신 받아 전해주겠다고 했다.
―본문 81쪽
이누리는 남자 주인공을 위해 복무하던 웹툰 속 이누리의 상황을 하나하나 파악해 나가며 차근차근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주는 친구 ‘정다운’을 사귀게 되고, 일본으로 ‘덕질 여행’을 떠난다. 인생 최초의 해외 여행길에 오른 누리는 처음 누리는 즐거움에 기뻐하다가, 다운으로부터 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웹툰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몇백 개의 작품을 읽으며 다운이 찾아낸 웹툰은 바로 《심야 근무의 사정》. 누리는 당장 작가를 찾아가서 웹툰을 중단하라고 요청하고자 한다. 과연 세계가 다른 두 인물은 만날 수 있을까?
나와 정다운은 일본에서의 관광을 중단하고 《심야 근무의 사정》을 그린 작가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밤새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쳤다. 《심야 근무의 사정》은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작가의 건강 문제로 인해
연재가 멈췄다.
정다운이 말했다.
“그래서 너에게도 행동의 자유가 생긴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이 만화의 연재가 재개된다면 나는 다시 내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부를 더듬고, 윤지훈을 욕정하게 되고? 그래선 안 됐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나 이 사람 꼭 찾아야 해.”
―본문 221~222쪽
이야기와, 이야기 속 이야기와, 이야기 바깥을 쾌속으로 꿰고 뒤집는
회빙환 시대의 고전이 될 이야기!회귀, 빙의, 환생을 함께 이르는 ‘회빙환’ 장르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회빙환 세계에서는 지금의 나의 지식과 감정을 가지고 혹은 새로운 캐릭터의 능력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삶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비웃듯 주인공이 빙의된 웹툰의 장르가 ‘내가 주인공이 아닌 오피스 하렘물’임을 주지시킨다. 심야 근무 후 과로로 사망한 사람에게 다시 한번 회사의 고용인으로서의 삶이 주어진다. 다시 주사위를 굴려도 1에서 시작하는 빙의물. 어쩌면 우리 인생에 리셋 버튼이 있더라도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누리의 세계는 사랑이 넘쳐나는 세계다. 이성애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이 모든 관계를 지배하는 세상. 이누리가 윤지훈의 모든 행동과 관계를 ‘관전’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은 사랑과 관계가 전시되는 현실과도 가까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성애와 성적 욕망 중심의 세계를 부수고 일하다 죽지 않는 삶, 발암 물질이 나오는 생활용품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나를 잘 먹이고 입혀서 이 어리둥절한 세계 속에 나를 계속 살려놓는 것. 거창한 목표는 없더라도 나 자신을 착실히 보살피는 이누리의 매일은 온갖 치정이 난무하는 성인 웹툰의 세계 속에서 홀로 곧게 선 사랑처럼 보인다. 한편 이 웹툰의 작가인 한소연은 자신이 사랑하던 그림을 끝끝내 그리지 못하게 된 창작자이다. 그는 모두가 사랑에 빠져 있는 세계를 무수히 창작해 내다가 그만 소진되고 말았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 창작의 기술과 만화 구성의 기술은 창작하고자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기능을 잃고 정지한다. 우리가 삶을 통해 학습해온 사회화 기능이 끝내 마음의 고통과 번아웃 앞에서 정지하듯이. 그러나 그는 진정한 독자였던 히카루의 할머니의 유품 앞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만화가 히카루의 앞에서, 자신이 오래도록 사랑해왔던 ‘창작물’을 마주하게 된다.
“독자가 바늘땀 자국을 찾아다니는 사이에 불가능할 것 같은 장르적 전복을 감쪽같이, 심지어 귀엽게 일으켜버린다”는 소설가 박서련의 말처럼, 이 소설은 웹툰 속 세계와 웹툰 밖 세계를 감쪽같이 접붙이는 소설이다. 하지만 허구를 통해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라면, 허구의 캐릭터가 이야기를 경유해 현실의 작가를 만나고자 하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문학의 본령에 더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양방향으로의 전복 속에서 소설은 언제나 19세 미만 구독 불가처럼 보이는, 이토록 폭력적이고 위험이 가득한 우리 각자의 삶에서 사랑을 길어 올린다. 바람이 서늘한 추운 날 장어 덮밥을 함께 먹는, 소소하지만 분명한 생의 의지를 그려내는 일. 나와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위한 확실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 같은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권혜영은 이 염세적이고 위기적인 세계에 사랑을 부활시킨다. 얼지 마, 죽지 마, 사랑으로 부활하게 될 거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