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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코메다
한국문연 | 부모님 |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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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신규범의 시는 대상의 숨겨진 면을 살펴보는 냉정한 눈빛과, 지난 시간이 만들어 내는 온화하고 정겨운 삶의 풍경을 지그시 떠올리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행위나 사태를 보면서 삶의 진실을 유추해 내는 시의 표정이 이번 시집에 흥건하다.

말의 낭비를 견제하고 절제된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인의 의지가 감지되기도 한다. 사람은 자연과 우주 생명의 일원이지만, 사회적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자연의 거대한 법칙 속에서 순간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생활과 사고에서 빚어지는 순간의 깨달음이 시로써 나타날 때, 재현되는 세계는 상징과 비유로 재해석된 현실의 풍경이 된다. 독자는 시를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고, 그 현실에 스민 진실이나 빈틈의 공간에서 발견하는 어떤 슬기를 감지하게 된다.

  출판사 리뷰

신규범의 시는 대상의 숨겨진 면을 살펴보는 냉정한 눈빛과, 지난 시간이 만들어 내는 온화하고 정겨운 삶의 풍경을 지그시 떠올리는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다. 행위나 사태를 보면서 삶의 진실을 유추해 내는 시의 표정이 이번 시집에 흥건하다. 그러면서 말의 낭비를 견제하고 절제된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인의 의지가 감지되기도 한다. 크게 보면 자연과 우주 생명의 일원인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적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자연의 거대한 법칙이 천변만화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속에 순간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는 일상에서도 늘 세계를 해석하고 들여다보려는 사유의 끈을 놓치지 않은 데서 연유할 것이다. 시인의 생각과 마음은 현실의 여느 시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창조적인 시의 형식을 위해 유지된다. 생활과 사고에서 빚어지는 순간의 깨달음이 시로써 나타날 때 재현되는 세계는 현실 그대로의 풍경이 아닌 상징과 비유로 재해석된 현실의 풍경이 된다. 이로써 독자는 시를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고, 되돌아본 현실에 스민 진실이나 빈틈의 공간에서 발견하는 어떤 슬기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밀코메다


우연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여름 쇠별꽃이 지고
파리한 얼굴 내밀던
새벽달
그날

고샅길 어둠이 쏟아지는 어간
비어 있는 집

헛걸음인 줄 알면서 가끔 들러
휜 처마 끝을 어울러 본다

별 무리
우주의 홍채
숨겨둔 시간의 잔인함

다시 태어날 어디쯤
수명을 다한 과거
바꿀 수 없는 신성

까닭 모를

사라져야 너를 볼 수 있는
상사화 같은

먼 자리
그 속에
돌아선 꽃잎으로 떨어진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비로소 없음이 있음을 찾는
술래가 된다

새벽 새보기


세 벌 논을 매고 간
아버지의 땀방울이 풀잎에 내린 논두렁
선잠을 깬 아이가 발등을 적시며

돌 대신
대막대기 끝에 논흙을 찍어
흔들리는 벼 이삭 위로
훠이훠이 던지면
새떼가 날아오른다

아이는 안다
허수아비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위가 뚫린 밀짚모자
가을볕 소나기로 쏟아지고
두 팔 삐딱하게 벌려 서 있는 어깨 위로
바람이 옷소매를 흔들어도

손끝에 쥐고 있는 워낭
모른 척 날지 않는 새가 있다는 것을

아이는 마을로 돌아가고
흰죽처럼 톡톡한 즙을 빨고 간 벼 이삭
흰머리를 들고 일어선다

깊이를 잴 수 없는 등비저울
첨벙첨벙 걸어간 새벽
쓰르라미 울음 그치면
고개 숙인 벼 이삭에는
새들이 앉지 않는다

다시 다른 내일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머구리


물속에는 지름길이 없다

기다란 산소 줄은 당신에게 맡기고
망설임 없이
다이빙 헬멧을 쓰고 열 길 물속에 뛰어든다

죽지 않은 육신이 검은 관 속에 서서
뚜껑에 나무 못질하는
망치 소리를 듣는다

중력과 부력 사이를 더듬는 소리 커지고
숨을 내뱉는 공기 방울 소실점을 알린다

무거운 머리 거꾸로 세워
문어를 잡고
전복을 찾아 눈알을 굴리는 바닥
하늘이고 천국이다

불현듯 생각나는 뱃머리
희미한 너를 찾아
잠수병을 떨치고
늦은 걸음으로 심박 수를 줄인다

죽었던 사람이 돌아오듯

눈물을 흘리지 않는 물고기를
뒤쫓는 넓은 수경
열어도 닫혀 있는 물길
사소한 일들은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물 밖이 지옥 같은 바다

다시 천국에 뛰어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신규범
경남 거창 출생. 2015년 『문학도시』에서 수필로, 2021년 『부산시조』에서 시조로 등단했다. 수필집 『박물관을 읽다』와 시조집 『늪의 소리』를 냈다. 2016년 금샘문학상 수필 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 부산시 지방서기관으로 명예퇴직하고 녹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피살이 10
삽수 12
mold 14
적산온도 16
도량형 18
밀코메다 20
휘도輝度 22
모탕 24
개밥바라기 26
weaver bird 28
네온사인 30
오래된 건반 32
목함지뢰 34
달팽이 36
기저선 38
내 몸이 잔이라면 40

제2부

단청 44
모루 46
핑퐁핑퐁 48
역접 50
닭싸움 52
그림책, 날아오르기를 54
쌍둥이별 56
가자미를 다듬는 손 58
포토존 60
영역領域 62
새싹보리 64
영여 66
잉크 68
훠이 훠이 70
거꾸로 선 마운트 쿡 72

제3부

침묵하는 의자 74
남십자성 76
새끼줄 기차 78
민물 80
시드볼트 82
돌 84
육성회비 86
새벽 새보기 88
일광욕 90
짐 자전거 92
자크르한 홈질 94
북 96
양은도시락 98
뜀틀 100

제4부

목물 102
도레미국 104
결명자 106
미늘 108
머구리 110
풀무질 몰아치는 밤 112
탁성 114
반죽 116
제주를 그리다 118
사이렌이 울리면 120
피막 122
꼭두가 나다 124
벗어들고 126

▨ 신규범의 시세계 | 정훈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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