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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한국문연 | 부모님 |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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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최금녀의 이번 시집에서 회상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선다. 그것은 상처 입은 어린 ‘아이(i)’를 다시 불러내어 마주하고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온전한 ‘나(I)’로 수렴되는 내적 화해의 드라마를 가능케 하는 윤리적 상상력의 형식이자, 흩어진 ‘나’들에게 보내는 고졸한 애도이다. 여성이자 이주민으로서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흔적, 재개발 속에서 지워진 시공간과 존재들을 끝까지 기억해 내는 “마지막 원주민”이라는 자기규정 속에서, 그의 시는 사적인 자전을 넘어 도시 변두리와 역사적 변방을 증언하는 윤리적 리얼리즘으로 우뚝 선다.

  출판사 리뷰

최금녀의 이번 시집에서 회상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선다. 그것은 상처 입은 어린 ‘아이(i)’를 다시 불러내어 마주하고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온전한 ‘나(I)’로 수렴되는 내적 화해의 드라마를 가능케 하는 윤리적 상상력의 형식이자, 흩어진 ‘나’들에게 보내는 고졸한 애도이다. 여성이자 이주민으로서의 몸에 새겨진 노동의 흔적, 재개발 속에서 지워진 시공간과 존재들을 끝까지 기억해 내는 “마지막 원주민”이라는 자기규정 속에서, 그의 시는 사적인 자전을 넘어 도시 변두리와 역사적 변방을 증언하는 윤리적 리얼리즘으로 우뚝 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결국 한 개인의 생애 서사를 통해 분단과 실향, 개발과 망실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신화와 성서, 자연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심문心紋을 형상화한다. 이 시집은 상처 입은 존재들이 어떻게 어둠을 통과해 다시 빛의 언어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끝까지 물으며, 동시에 그 물음 자체를 삶의 형식으로 견뎌낸 한 시인의 응축된 증언록이 아닐 수 없다.

압록강

이곳에서 명사십리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
망원경을 눈에 바짝 대고
강 건너 북한 땅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리운 고향 영흥
장백산 아래
동해 바다를 가슴에 품은 곳
지금은 정치 수용소가 들어선 곳

여기 단동에서
내 태가 묻힌 곳을 바라본다

큰아버지가 사는 기와집이 있는 곳
평양댁이 관리하는 과수원이 있는 곳
러시아 군인이 별사탕을 던져주는 철길이 있는 곳
아카시아 꽃길이 있는 곳
보리밭을 밟는 여자들이 손을 흔드는 산기슭이 있는 곳

큰 마당 작은 마당이 있는 곳
축음기가 있고
외갓집이 있고
사촌 오촌이 있고
해마다 뻐꾸기가 울고 가는 언덕이 있는 곳
놀잇배가 느릿느릿 떠 있는 용흥강이 있는 곳

지금은 누가 살고 있을까?
기차선로는 깔려 있을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나는 쓰고 있다.

늙은 원주민

1
이 골목은
있었던 것들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것들이 많다
꼬마 백화점
전파사
철물점
금은방
이불집
방앗간

이삼 년에 한 번씩 온통 꽃밭이던
도배 장판집도 사라졌다

나는
승용차들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이 길이
본래 물길이었다는 것을 아는
마지막 원주민이다

2
버드나무 새순이 연두 점처럼 찍혀 있다
책가방을 내려놓은 아이들이 공 차기를 했다
패스 패스 소리를 지를 때마다
흙바닥에서 흙먼지가 날렸다
어쩌다 공이 놀이터 밖으로 튀어 나가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공을 쫓아가
울안으로 정성껏 던져주었다

아이들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먹은 아이들은
책가방을 들고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때부터는
촉수 약한 알전등이
혼자서 놀이터를 지켰다

3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녔다
내가 들었을 즈음에는
다방 마담과 의사 선생님이 좋아지낸다는
여우 같은 옷집 여자가 착한 과일 가게 총각을 망친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다음 일이 궁금한 이야기들이
날마다 흘러 다녔다
사실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떠돌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이야기들

4
자고 나면 새 글자가 생겼다
그들만 아는 글자로 간판을 걸고
아침에 개업하고 저녁에 폐업했다

몇 시에 들어오고
몇 시에 나가는지
그들만 알았다

양말을 신지 않고 츄리닝 바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갔다

나는 이곳에서 50년을 견뎠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꾸며놓은
인디언 촌락의 늙은 원주민처럼
총알 없는 탄띠나 차고
들지 않는 나무칼이나 메고
맥없이 어슬렁거린다

5
기계 위에 얼음덩어리를 올려놓고
기계를 돌리면
얼음이 부스러져 빙산을 이루었다

소복한 빙산 위에
새빨간 물을 치고
새까만 팥 알갱이를 올려놓은
얼음 부스러기들이
기막히게 맛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핸드폰 속의 별의 수를 세어보는
아이들의 뒤쪽에 섰다
세어보지 않아도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나무들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잠시도 너희들 잊지 않았다

강물들아, 울지 마라
우리가 한 몸 되는 좋은 시절이
오고야 말 것이다

바람아, 우리 언제 모여
밥 먹으러 가자
한솥밥,
남과 북이 한데 모여 먹는 밥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그날이 오고 있다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 흘러만 가자.

  작가 소개

지은이 : 최금녀
함남 영흥 출생. 1962년 『자유문학』 소설 입선. 1998년 『문예운동』으로 시 창작. 시집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길 위에 시간을 묻다』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 등 9권. 공초 문학상, 펜문학상, 현대시인상, 여성문학상 등을 수상. 대한일보 기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역임.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이쪽과 저쪽

압록강 10
장백산 줄기줄기 12
목소리 14
구름 한 조각 16
이쪽과 저쪽 18
아, 시간 21
삼리 22
서울 며느리 26
부부 29
1980년 대청호 30
러시아 춤 32
로스께의 별사탕 34
반동분자 36
공민증 38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40

제2부 코크스

부산 1950 44
모래바람 46
도둑 일기 48
한솥밥을 먹었다 50
고모 52
도너스 54
맹목적인 송도 57
일찬네 60
바라크 62
물지게 64
목구멍은 열린 무덤 66
히까리마찌 68
년년, 놈놈, 욕욕 71
옥시풀 72

제3부 쉴만한 물가인 줄 알고

하얀 탑 74
껌 싸기 76
정동 16번지 78
화장터가 보이는 집 82
쉴만한 물가인 줄 알고 84
안반데기 85
불광동 86
입김 87
홍제동 88
컴컴하고 개구리가 울었다 89
내 이름 90
연극 시간 92
날마다 비판 94

제4부 늙은 원주민

갈 곳이 없다 98
늙은 원주민 100
주행走行 105
연두색 띠 106
만 보를 생각하다 108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110
흐려진다 112
망향 제단 114
통곡한다, 랭면 116
아버지, 서 계시다 118
도라산역 120
비둘기 운다, 꽃 진다고 122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125
이북5도청 126
2045년 130

▨ 최금녀의 시세계 | 염선옥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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