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리윤의 두번째 시집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5번으로 출간되었다. 2023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작가인 김리윤은 자신의 믿음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훼손되고 상처 입는 물질을 완결이 아닌 영원으로 전망하는 시의 언어를 펼쳐 보인다.
이번 시집은 세계를 온전히 재현할 수도, 그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이중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제목의 ‘눈’은 사물을 지각하는 신체 기관과 눈[雪]이라는 물질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으며, 감각과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지 질문한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형되는 세계 속에서 시인은 ‘보기’를 전제로 한 ‘보기’의 실패를 탐구한다. 자신이 볼 수 있다고 믿었던 감각을 의심하게 하면서도,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시집이다.
출판사 리뷰
“우리가 보는 것들에게도
우리의 눈이 돌이킬 수 없는 마주침일까?”
실재하는 대상을 완전히 재현할 수도
그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이중의 불가능성 속에서
언어만이 구축할 수 있는 영원으로 나아가는
시인 김리윤의 두번째 시집
시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여준다. 응시를 가로지르며 찢는다. 찢긴 응시를 다른 방향으로 이어 붙인다. 우연을 도입한다. 의미화될 수 없는 우연들이 서로 뒤엉키며 멈추고 굴러가고 튀어 오르며 관계 맺는다. 보기를 흔든다. 완결된 보기를 불가능하게 한다. [······] 언어는 영원을 가능하게 하는 보여주기라고. 없는 몸을 통해 피와 살과 뼈를 가진 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보여주기. 그리고 투명한 자루에 가능한 모든 지각을 담아 시선 앞에, 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응시 앞에 놓아주는 재료라고.
─2023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소감에서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리윤의 두번째 시집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5번으로 출간되었다. 2023 문지문학상 시 부문 수상 당시 “무엇을 믿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보다 무엇을 보기 위해 나를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 시인은 자신의 믿음과 관계없이 작동하는 세계를, 끊임없이 훼손되고 상처 입는 물질을 완결이 아닌 영원으로 전망하기 위해 기꺼이 ‘보기’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투명한 얼굴을 내보인다.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 단지 있음의 상태만으로 그 존재의 가치를 입증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선언하는 것처럼”(문학평론가 강동호) 읽히는 김리윤의 시는 “동시대의 가장 정교한 구축과 해체의 과정을 실현하고 있다”(문학평론가 이광호)라는 평과 함께 “도무지 지름길을 모르는 듯한 그 걸음이, 느릿느릿 더듬듯이 나아가는 그 손길과 눈길이, 희미한 탐조등처럼 빛나는 자리에서”(시인 김언) “사유와 감각이 ‘동시에’ 가장 예리하게 깊어지면서 ‘동시에’ 드넓게 퍼져 나간다”(시인 김행숙)라는 찬사를 받으며 한국 시단에 전에 없던 새로운 미래가 등장했음을 예고했다.
시의 언어를 하나의 기호 체계가 아닌 변형의 장소로서 정의하는 이번 시집은 세계를 온전히 재현할 수도, 그 안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이중의 불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시집의 제목 “야생의 눈과 눈 안쪽의 야생”에서의 눈은 인간의 신체 기관 중 하나인 ‘눈〔目〕’과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체 ‘눈[雪]’의 이중적 의미를 모두 갖고 있다. 사물을 지각하는 주체로서의 눈과 외부적 요건에 따라 녹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물질의 중첩을 통해 본다는 것의 의미와 감각과 언어가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지에 관해 묻는 것이다. 세계에 의해 오염되고 변형되는 물질은 타인의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형되기에 김리윤의 이번 시집은 ‘보기’를 전제로 한 ‘보기’의 실패를 의미한다. 시인에게 어떤 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눈앞의 물질을 분별하는 게 아닌 그 대상을 온전히 보는 것이 불가능함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자신과 관계하는 사물을 한자리에 고정시키지 않은 채 서로의 시선이 충돌하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정동까지도 들여다보는 것. 이렇듯 그의 시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깨뜨리는 동시에 새로운 눈으로, 마음으로, 감각으로 어떠한 오해 없이 온전히 바라보는 방법을 함께 찾아갈 것을 촉구한다.
“영원을 알아버린 것처럼 겁에 질린 얼굴로
개를 잃어버린 영원처럼 겁에 질린 얼굴로”
일단 개라고 불러봐.
새 수첩의 첫 페이지에 적은 문장이다. 어디서 본 것인지, 꿈에서 들은 말인지, 누군가 일러줬던 이야기인지, 일러준 이가 있었다면 그이는 심리 상담사였는지, 꿈속의 마녀였는지, 스님이었는지, 점쟁이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일종의 주술이나 부적 같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개라고 불러봐. 개라고 부르면 눈 쌓인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듯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으로만 두려움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은 어떤 공포와도 다른 방식으로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망들─한 마리 하나 한 개? 부분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상 망각의 동물”에 가깝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필수적이고도 능동적인 본능인 것이다. 반면 베르그송은 ‘기억’이야말로 하나의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원동력, 즉 생명과도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다름 아닌 기억을 통해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고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기억하고 행복을 좇아 망각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기억은 무엇일까. 김리윤은 인간이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이 사랑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순간의 감정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를 끊임없이 호명하는 것이다. 이렇듯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영원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남기는 일일 것이다. 시의 화자는 자신의 존재 가능성마저 잃어가는 개를, “영원을 알아버린 것처럼 겁에 질린 얼굴로” “걷는 법을 잃어버리며 걷는/기억이 몸의 내용인 것처럼 점차 작아지는”(「감정과 징후」) 개를 다시 불러본다. ‘쿵’이라 불리는 개는 “마치 기억으로 빚은 개인 것처럼, 기억이 살점을 덧붙이는 물질처럼, 기억이 이루는 부피처럼 작아지고 있”고 시의 화자는 “슬픔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려도, 슬픔이라는 단어를 갖지 못해도 슬픔을 알게 되고야 말듯이”(「감정과 형상」) 끊임없는 감정의 이동을 경험한다. 시집에서 ‘개’는 정서적 교감의 대상이 아닌 그 무엇도 소유할 수 없는 세계의 구조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형상에 가깝다. 자기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린 개, 목줄이 헐거워질 정도로 작아지는 개, 반복되는 부름을 듣지 못하는 개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불능 속에서 서로를 소유하는 게 아닌 돌봄으로써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게 아닌 끊임없이 주어지는 상황을 재설정함으로써 ‘개’는 하나의 상징이 아닌 사건으로 작용한다. 부름이 실패한 후에도 몇 번이고 다시 ‘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지금 눈앞의 물질이 한순간에 사라져 영영 볼 수 없을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혼돈 속에 놓여 있을지라도 바라보고, 부르고, 돌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 예기치 못한 망각에 휩싸이더라도 자신을 붙들고 있는 기억들을 헤집어 다시 한번 불러보겠단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그것은 사라짐을 향해 움직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연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향해 움직인다. 더욱 움직인다”(「감정의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시구는 인간의 운명이 소멸이라면 이를 향해 손을 뻗고 움직이는 것은 사랑의 실천임을 보여준다.
“기억은 표면을 사랑하기 때문에
얼굴은 추상이 되지 못한다”
추상은 꿈꿀 공간을 준다지만
너는 구체적인 창문을 필요로 했다
꿈꿀 공간 말고
손에 잡히는 눈에 보이는
설명할 필요 없이
보여주면 그만인 그런 것
그런 창문을
원했다
시간을 잘게 부수어 눈을 위해 사용하기를
─「깨끗하게 씻은 추상」 부분
“잠에서 깨듯이 장면을 깨뜨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감정의 자연스러운 상태」). 김리윤의 「전망들」 연작은 단어의 뜻 그대로 펼 전(展)과 바랄 망(望),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를 염원하는 마음이 맞닿는다는 점에서 이는 눈앞에 놓인 현실인 동시에 아직 가닿지 않은 미래를 의미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풍경은 물리적인 조건에 기반한 보기의 양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각과 감정, 언어와 형상, 인식과 이미지가 뒤얽혀 발생하는 하나의 관계적 형식이며, 불확실성과의 공존을 감각하고 감당하려는 실천에 가깝다. 전망은 눈앞에 실제로 놓인 장면이면서 동시에 아직 도래하지 않은 감각의 방향을 포함한다”(시인이 쓴 시집 소개 글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풍경을 그림으로써 현실의 이면을 포착하는 김리윤의 시는 영원히 불가해한 사건으로 남을 사랑의 본질은 기다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의 가변적인 속성에 관해 속단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이번 시집의 마지막에 수록된 시의 마지막 구절, “사랑과 함께 미래의 사랑을 향한다”(「가변 테두리의 사랑」)라는 다짐이 지금의 시대에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허물어지는 세계를 해명하기보단 살아 움직이는 물질을 곁에 두고 바라보는 일. 시인에게 시는 세계를 만지고, 말하고, 변형되어 영영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자연을 자신의 눈 안쪽에 남겨두는 일이다.
시인의 ‘보기’는 결코 깨끗하고 무결한 원시적인 눈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시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보기와 믿기가 불확실하게 뒤섞여 있는 지대에서 본다. 이때 시인의 제안은 보기와 상상을 대척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과 상상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다. [······] 적나라한 것, 과도한 가시성으로 스스로 취약함을 갖는 것. 그런 모양새로 세계에 투신하는 일이다. 세계가 희망을 녹여 만든 것이라면, 무엇이 텅 빈 상태의 세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지 의식함으로써 거꾸로 희망을 더듬어 보는 일이다.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추상이다. 세계의 지저분한 이미지들을 날려버리는 표백으로서의 추상이 아니라, 사유를 위한 보기 방식으로서의 추상이다.
─김예솔비 발문, 「추위 길들이기」에서
모두 다른 마음으로 모두 다른 창문을 보고 있다 해도
시작되는 시간이 있어
녹은 눈과 서리가 뒤엉킨 땅이 서걱거렸어
쌓인 눈을 본 적은 없지만 다 녹은 다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지면을 밟으면 튀어 오르는 기억이 없고
목적지에 대한 생각이 없고
궤적이 없는 시간
서로를 간섭하며 선을 그리는 배회가
시간이
부드럽게 우리 주위를 배치하고 있었지
―「전망들─우연과 리듬」 부분
“소리는 이미지보다 쉽게 현실을 꿈의 면으로 뒤집는다. 그러니 잠에서 깨듯이 장면을 깨뜨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
담벼락을 뛰어넘으며 고양이가 깨진다. 담벼락 너머 감나무 잎사귀 흔들리며 깨진다. 전봇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손에 들린 담배 연기 깨진다.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허공의 어둠을 깨뜨린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손끝에서 넘어가는 책장이 깨진다. 오토바이가 골목 어귀로 사라지며 깨진다. 개와 걷는 저 사람, 개의 독특한 보법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깨진다. 개의 발에 챈 콜라 캔이 굴러가며 깨진다. 나는 계속 걷고 있고 모든 것이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나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이 모든 것이 깨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연속적으로 장면의 바깥으로 밀려나며 새로운 장면에 삽입된다. 깨지는 소리가 이전과 이후의 장면을 알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나는 안심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세계를 견딜 수 있다. 비자연이 되기 위하여 장면의 모든 것은 깨지는 물질을 가진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상태」 부분
모자를 뒤집을 때 시작되는 집이 있다면 모자를 뒤집는 당신이 있다. 모자였다가 손 우물이었다가 집이 될 당신의 부분, 뒤집힌 모자가 되는 당신의 손이. 머리통의 입체를 기억하는 집이. 아주 어리고 연약한 것의 털은 집에서도 푹 젖어 있다. 몸이 속한 곳이 공중인지 지면인지, 집인지 물속인지 구름 안쪽인지 착각하게 하는 젖은 털. 안팎이 뒤집힐 때 내 안쪽이 온통 세계가 되듯이, 떨며 서로를 혼동하는 숨과 물. 우리의 숨과 뒤엉킨 허공. 돌아가려는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있고, 거기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아니 집이라는 이름이 사건을 끌어당기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에 뒤집히는 모자가, 모자의 반영으로서 떨리는 주변이 집을 이루는 구조가 될 때. 집에 가자, 말하는 사람의 뒤집어진 모자가 당신의 오목한 손을 닮을 때.
―「돌보는 숨」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리윤
2019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투명도 혼합 공간』, 산문집 『부드러운 재료』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2023)을 수상했다.
목차
시인의 말
눈이 야생을 베끼는 동작
전망들 | 전망들 | 손에 잡히는 | 공간의 속도 | 사물의 속도 | 전망들
나의 꿈이 너의 몸을
스케치업(SketchUp) | 영영 | 녹는 눈 감는 | 전망들 | 전망들
잠을 태우는 불소리
감정과 형상 | 감정과 징후 | 감정의 자연스러운 상태 | 깊은 손 | 깨끗하게 씻은 추상 | 조명하지 않는 빛 | 전망들 | 전망들
모자를 뒤집으면 시작되는
숨과 올 | 새 숨 | 비유와 착각 | 돌보는 숨 | 돌보는 숨 | 가정 동물 | 착각 엎지르기 | 잠과 뼈 | 빈손 없이
사랑이 시간을 다루듯이
함께 떨어지며 열리는 | 전망들 | 전망들 | 손에 잡히지 않는 | 전망들 | 무른 무너지는 | 재료의 기계적 성질 | 부드러운 재료
즉흥 기억
우리의 여기의 이것의 | 겹겹 | 미미한 더미 | 미끄러운 복원 | 문턱에서 기다리기 | 언제나 신선한 프레임 | 물 만지기 | 손의 정면 | 새 문서
소음이 영원의 둘레를 감싼다
전망들 | 기억술 | 물질세계의 디테일 | 검은 돌 안에서 | 아늑해지는 | 두 사람의 새 창 | 가변 테두리의 사랑
발문
추위 길들이기·김예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