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인간의 진실한 교류가 증발하고 있는 요즘, 서로가 서로에게 영혼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2024년 『애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영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앵무들』은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고립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응시하며 현대 사회의 단절과 고독, 감정 없는 언어의 반복을 서늘하게 포착한다.
『앵무들』 연작은 ‘의미 없는 말의 반복’이라는 앵무새의 속성을 통해 오늘날 인간 사회의 소통 불능을 드러낸다. 외부와 단절된 노인의 삶, 반복되는 지하철 안내 방송, 스마트폰 화면 속 사람들, 감정을 학습한 서빙 로봇의 시선을 통해 가장 많은 언어가 오가는 시대에 진실한 교감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가운 진단에 머물지 않고 잃어버린 날개를 회복하려는 희미한 몸짓에도 주목한다. 「앵무들 3」의 “살구나무 가지에 앉은 이름 모르는 새”, 「실루엣들」 속 백로처럼 몸을 움직이는 인물은 인간과 기계, 도시와 고독 사이에 아직 남아 있는 생명의 기척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보여주며, 서로의 체온과 목소리를 회복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불러낸다.
출판사 리뷰
인간의 언어가 사라진 도시,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아직 들을 수 있는가
시인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실한 교류가 증발하고 있는 요즘, 서로가 서로에게 영혼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이 서늘한 진단 속에서도 시인은 ‘우리의 날개는 무사한가’를 걱정하며, 잃어버린 체온과 언어의 회복을 소롯이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영선 시인은 소외된 일상 속에서 날개를 회복하고자 하는 희미한 몸짓에 집중합니다. 「앵무들 3」에서 서빙 로봇이 목격하는 건 “창 밖 살구나무 가지에 앉은 이름 모르는 새가 푸드득 푸드득 날갯죽지를 적시”는 장면입니다. 「실루엣들」에서 아파트 거실에 있는 여자는 하천의 백로를 관찰하며 “그와 몸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트 위에서 백로처럼 목을 늘리고 양팔을 아래위로 퍼덕이며 춤을 추는 그녀는,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현대인이 잃어버린 날개를 되찾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갈망을 처절한 몸부림으로 표현하는 듯합니다.
― 김보나 시인
이영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앵무들』이 출간되었다.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2024년 『애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고립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앵무새와 AI 기술, 노인의 삶, 지하철과 식당 같은 일상적 공간을 경유하며, 현대 사회의 단절과 고독, 그리고 감정 없는 언어의 반복을 서늘하게 포착한다.
『앵무들』 연작은 ‘의미 없는 말의 반복’이라는 앵무새의 속성을 통해 오늘날 인간 사회의 소통 불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앵무들 1」에서 시인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한 노인의 삶을 보여준다. 열린 문조차 닫힌 문처럼 느껴지는 집 안에서 노인은 말을 잃고, 앵무새와 라디오만이 인간의 언어를 대신한다. “어디 아파”, “약 먹어” 같은 말들은 돌봄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감정이 제거된 기계적 소음처럼 반복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I’m young”이 “안녕”으로 들리는 장면은, 늙어가는 인간의 현실과 젊음의 환영이 교차하는 깊은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이어지는 「앵무들 2」에서는 앵무새의 상징이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지하철 안내 방송은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지나친다. 시인은 이들을 마치 새장 속 앵무새처럼 바라보며 “저들의 날개는 무사한가”라고 묻는다. 반복되는 안내 방송과 무표정한 군중의 풍경은, 정작 가장 많은 언어가 오가는 시대에 진실한 교감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앵무들 3」은 식당 서빙 로봇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로봇은 웃음과 친절, 하트 모양의 감정 표현까지 학습한 채 손님들을 응대하지만, 영업이 끝난 늦은 밤 텅 빈 홀에서 “맛있게 드세요 전 집에 갈게요”라는 문장만을 공허하게 반복한다. 감정을 흉내 내는 기계의 언어와, 식당 안에 떠도는 인간 삶의 냄새들이 충돌하는 순간, 시인은 기술 시대의 외로움을 섬뜩할 만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이영선 시인의 시선은 단지 차가운 진단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 곳곳에는 잃어버린 날개를 회복하려는 희미한 몸짓 또한 존재한다. 「앵무들 3」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빙 로봇이 바라보는 “살구나무 가지에 앉은 이름 모르는 새”는 인간과 기계, 도시와 고독 사이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생명의 기척처럼 읽힌다. 「실루엣들」 속 인물이 백로처럼 몸을 움직이며 자유를 갈망하는 장면 역시, 닫힌 공간 속에서도 다시 날아오르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본능을 보여준다.
『앵무들』은 인간의 언어가 점점 기능과 효율로 환원되어 가는 시대를 응시하는 시집이다. 동시에 그 안에서 여전히 서로의 체온과 목소리를 회복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시집이기도 하다. 시인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영혼 없는 말을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잃어버린 날개의 감각을 조심스럽게 다시 불러낸다.
I’m Young…
음악이 흐른다. 베란다 구석에 걸린 새장 문이 열려있다. 구름이 지나간다. 아임 영, 암 영, 안녕, 안녕, 새가 말한다.
노인은 현관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검은 구두를 바깥쪽으로 가지런히 돌려놓고 아고고고 아구구구 새의 말을 한다.
현관문 안의 모든 문은 열려 있지만
열린 문들은 닫힌 문과 같고 닫힌 문은 여전히 닫힌 문인 채 닫혀 있는 그의 집에는 언제부턴가 인간의 악다구니가 새의 먹이로 사라진 지 오래.
그 악다구니를 받아먹고 살아온 새가 말 한다.
어디가어디가??
어디아파 어디아파!!
약먹어약먹어
노인은 그저 이 방 저 방을 걸어 다닌다.
길게 휘어진 발톱이 바닥을 긁을 때마다
으이구구 으이 구구 푸우 푸후우
무슨 짐승 소리로 목울대를 떨어대다가
가죽만 붙은 손가락으로 라디오 볼륨을 높힌다.
― I’m Young~
― 영~ 아임 영~ 암~영 ~안녕~안녕
라디오가 앵무처럼 운다.
― 「앵무들 1」 전문
이 식당을 네가 구했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중얼거리며 50번 테이블의 키오스크로 나를 불렀다.
내가 물과 컵, 물수건을 가지고 뽈뽈거리며 회전할 때 51번과 52번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일제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가느다란 쇠다리와 짧은 발목이 보이지 않게 견고한 몸통에 말아 넣었다.
맘만 먹으면 수십 바퀴 회전도 문제없는 나의 검은 발은 몸에 비례해 너무 크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계산대에 멍청히 선 AI보다 나는 진화가 빠른 종족, 네 개로 진화된 손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나는 고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다.
‘맛있게 드세요 전 집에 갈게요.’ 유머 있는 멘트까지 날리며 테이블 사이를 종일 쪼르르 쪼르르 다니는 나는.
반짝반짝 하트를 뿜어대는 눈을 가진 나는,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가진 나는, 권태 따위는 없는 나는.
사람들이 막걸리 잔을 들어 서로 부딪히며 추가 주문을 할 때, 나는 뾰롱뾰롱 하트를 보내고 지루함 따윈 없는 하루를 선물하는데.
늦은 밤 붐비던 고객들 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재잘거리던 소리들 제각각 돌아갈 때 나는
맛있게 드세요 전 집에 갈게요.
입력된 멘트를 고장난 레코드처럼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 보는데.
미등만 켜진 넓은 홀에는 맵고, 짜고, 비리고, 구수한 것들이 뒤섞여 어떤 메뉴인지도 모를 냄새들이 안개처럼 떠다니는데.
천장에 달린 검은 스피커에서는 어제 들었던 음악이 재생되고.
창 밖 살구나무 가지에 앉은 이름 모르는 새가 푸드득 푸드득 날갯죽지를 적시고.
― 「앵무들 3」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영선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고, 2024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가 있다.이영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앵무들』은 도시라는 거대한 장치 속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시적 시도이며, 그는 특히 앵무새, AI 기술, 그리고 노인의 삶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절과 고독을 가장 날카롭고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그 연분홍 꽃 속에 숨어든 달빛이
월은月隱에서 12
칡꽃 13
거북처럼 14
처서 16
전문가 18
물수국 20
올리브나무 21
내전 22
죽부인과 오토바이 23
레플리카 클림트 전 24
쿵! 25
월은리 호랑꽃무지 26
백로白露 즈음 28
낮잠 29
2부
앵무처럼 목울대를 떨어대다가
앵무들 1 32
앵무들 2 34
앵무들 3 36
박스들 38
실루엣들 40
4분33초 42
폭격기의 달이 뜨면 45
환혼還魂을 시작하다 46
좀머씨의 휴일 48
3부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모과와 개 52
유월 53
4월 54
안과 56
사무실 1 58
사무실 2 59
셔틀콕 60
모음의 변이 61
몽우 62
우리 64
기억 66
등 67
황지 1 68
황지 2 70
동해에서 71
4부
꽃향기가 길을 훅훅 불며 갔다
문밖의 아카시아 나무들 74
푸른발부비새 76
시계 수리점 77
활옥동굴 철갑상어 78
그 섬에는 79
교란 81
봉명산 출렁다리 82
헌책방 84
이강년의 임형시를 보고 86
삶은 고구마 속 같은 88
효소 90
문어 92
시루섬, 붉은 강 94
입춘 근처 96
┃해설┃소외된 존재들의 날개를 찾아서┃김보나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