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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활기찬 나날, 니스벳
사람이크는책 | 부모님 | 202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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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1907년 내한하여 1939년까지 32년간 호남 선교에 충성한 니스벳 선교사와 두 아내의 삶과 선교를 그렸다. 니스벳 가족은 전주에 이어 목포 선교부에서 목포 북부 지방인 무안과 함평을 중심으로 순회 전도하며 교회를 이끌었다.

목사였던 니스벳 선교사는 전남 서남권 일대를 돌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한국인 일군을 앞세워 마을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다. 첫 아내인 애너벨 니스벳 사모는 교육자로서 목포 여학교장을 맡아 목포 지역의 여성 교육 운동에 기여하였다. 니스벳과 아내들이 남긴 서신과 보고서 영어 원문을 수집하여 한글 번역본과 함께 첨부하였다.

  출판사 리뷰

미남장로교 니스벳 선교사는 아내 애너벨과 함께 1907년 내한 선교하였다. 38세 때의 일이다. 첫 부임지는 전주였다. 전주 선교부에서 학교 교육 사역에 충성하였으며, 4년 후 1911년 목포로 전임되었다. 1939년까지 니스벳 목사는 주로 함평군과 무안군 일대 농촌 마을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목양하였다. 아내 애너벨 사모는 정명여학교장을 맡아 초창기 목포 여학교의 체계를 세우고 교육의 틀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편저자 김양호 목사는 호남에 와서 수고한 미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삶과 선교를 추적하고 연구하며 이들의 활동과 교회 사역을 책으로 펴내는 일에 힘쓰고 있다. 특히 목포를 중심으로 전남의 고을 곳곳의 교회사를 찾고 이를 드러내며 하나님이 이 땅에 펼친 귀한 은혜들을 밝혀왔다. 목포 1세대 개척자 유진벨을 중심으로 목포 서남부 섬지역 사역을 다룬 매컬리, 목포 동부 지역 순회자 조하파에 이어 목포 북부 지역 무안과 함평을 다룬 니스벳 책이 나오게 되어 목포와 전남 서남권의 대표적 사역자들을 지역의 문화 역사와 함께 다루게 된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100여년 전 지금과는 말도 안되는 어렵고 불우한 호남 벌판을 찾아 수고하고 애쓴 선교사들의 수고와 땀을 통해 하나님이 이 고을에 펼친 은혜를 살피며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새삼 각성하고 복음 은혜의 초심을 회복하여 바르고 온전한 하늘 섬김과 충성으로 이어지는 귀한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

1911년 9월 목포에 와서 여학교 책임을 맡자 애너벨은 자신의 전문성과 경력을 발휘하여 학교 운영과 학제 개편, 교사 신증축, 교육 내용의 다변화에 노력을 가했다. 학생들은 크게 증가하였고, 더불어 한국인 교사도 기존의 조긍선 선생에 더해 곽우영, 박애란, 김경희 선생 등이 보강되었다.
1912년 105평의 2층 석조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여학교는 2년제 중등과정(고등과)을 신설하였고, 78명의 여학생을 등록하였다. 목포에서는 최초의 중등과정 학교가 시작된 것이었다. 1914년 3월 첫 중등과정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이때 학교 이름을 ‘목포정명여학교’로 개명하였고, 학제도 4년제 보통과와 4년제 고등과로 재편하였다.
일본 식민통치에 의한 조선교육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학교처럼 보통과를 6년으로 후에 고친 것도 같은 이유였고, 학교 이름을 남자는 영흥, 여자는 정명학교로 정한 것도 이때 일이다.

전라남도는 선교부 세워진 것을 기준으로 크게 목포와 서남권, 광주와 북부권, 순천과 동남권으로 지난 1세기 넘게 영역이 구분되었다. 목포와 인근 지역은 목포시를 중심으로 9개 시군이 한 묶음으로 자연스레 정해지며 한동안 이들 지역으로 한 노회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들 여러 시군을 또 선교회에서는 3 개 권역으로 나눠 각기 선교사가 책임자로 일했다. 목포 서남부에 있는 여러 섬들, 신안, 진도, 완도와 해남 권, 목포의 동부인 영암, 강진, 장흥 권, 그리고 목포 북부의 무안과 함평 권이다.
1910년대 전후부터 1940년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으로 미국에 돌아가기까지 이들 지역은 특별히 남자 목사인 경우 3 사람의 헌신과 주도로 교회 사역이 이뤄졌다. 서남부 섬 지역은 매컬리(맹현리) 선교사, 동부 지역은 조셉 하퍼(조하파) 선교사, 그리고 북부 지역은 니스벳(유서백)선교사다.

예수그리스도의 기본 공생애 사역의 핵심은 지난 2천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며 동일하게 이어지고 곳곳에 교회와 하나님나라의 정의와 평등, 고침과 회복이 이어졌다. 미국을 거쳐 한반도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도 이와같은 일들은 동일하게 벌어졌다. 미북장로교. 미남북감리교, 캐나다장로교, 호주장로교 등과 여러나라 여러 교단에서 숱한 선교 사역이 일어났으며, 호남과 제주를 중심으로 벌인 미남장로교 선교역사도 어슷비슷하게 펼쳐졌다.
미남장로 선교사만 450여명이 호남에 와서 일을 벌였다. 전주와 군산, 목포, 광주와 순천을 중심으로 목사와 의사, 간호사 교사 등의 수고와 땀이 오늘 우리 주변의 교회와 복된 자의 삶을 사는 성도들의 모습이다. 목사와 여성 선교사 등은 대표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치중하였고, 각 선교부마다 해당 지역을 분할하여 일과 책임이 주어졌다. 목사 선교사들은 봄과 가을에 교회와 모임 처소를 다니며 설교와 함께 세례 성찬을 베푸는 게 큰 사역이었다. 신앙이 자라 문답을 받고자 하는 이들에겐 거의 비슷한 주제의 질문이 주어졌고,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이어지면 학습 혹은 세례가 베풀어졌고, 성찬례가 이어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양호
애당초 본질주의자이며,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신 윗길을 택했다. 목포 송림 캠퍼스를 거닐 때만해도 안정된 교직생활이 보장되었으나, 굳이 서울에서 교육학(연세대학원 석사)과 신학(합동신학대학원 석사)을 오래도록 더하고, 서울을 버리고 2003년 고향 목포로 단호히 돌아와 지역사회의 기독교 교육과 목회에 힘써왔다. 이제는 감히 개척자이며 패스메이커(Path maker)로서 전남 기독교 역사연구와 글쓰기에 진력하고 있다. 저자는 '하누리 교회'를 담임 목회하고 있으며, '목포 기독교 역사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는 <사람이 크는 교육>, <모세 사경회>, <목포 기독교 이야기>, <전남 기독교 이야기> 1, 2, 3, 권, <목포 문학 기행>, <물근원을 고쳐라, 유진벨 선교사>, <이 섬에 생명을, 저 섬에 소망을, 맹현리>, <3대가 펼친 호남 선교, 조하파>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

1부 니스벳 부부의 선교
1. 1907년, 호남 선교 줄기를 세우다
2. 애너벨의 전주 선교
3. 목포로 가시오
4. 목포 여학교장 애너벨
5. 호남에서 펼친 서양식 근대 교육
6. 나비야 나비야 훨 훨
7. 떠돌이 전도자
8. 목포에서의 활기찬 나날
9. 4.8 만세 운동과 애너벨 순직
10. 첫 전남 노회장

2부 니스벳 선교사 글

* 니스벳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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