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순간의 삶 속을 돌며 건네는, 커다랗고 끝없는 사랑의 인사
고요히 쌓아온 냘구 작가의 눈부신 단편 세계
표제작 「다정의 고리」
“이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따뜻한 감정, 사랑이야.”신의 임무를 받아 인간 세상에 온 천사는 머리 위 고리를 잃어버리며 기억도 임무도 잊어버린다.
천사를 우연히 만난 은정은 그에게 '다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고리를 함께 찾기 시작한다.
점점 인간들의 세상에 정이 들어가는 다정. 그가 인간 세상에서 해야 하는 임무는 무엇일까.
단편 「사라 로랜스키의 존엄한 생일」
“생일 축하해, 샐리. 죽고 싶다는 너의 뜻. 지금도 변함없는 거야?”인간을 돌보는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된 가깝고도 먼 미래의 어느 날.
60세의 나이에 죽기로 결심했던 샐리는 로봇 해나와 60살 생일 파티를 연다.
샐리는 죽음에 대한 변함없는 뜻을 전하고 해나는 그의 죽음을 따뜻하고 순조롭게 돕는다.
● 단행본 첫 공개 「사라 로랜스키의 존엄한 생일」 「다정의 고리 에필로그」 수록
유한한 만남으로 이루어진 삶, 그곳을 머무름 없이 돌고 도는 사랑.
천사의 날갯짓과 로봇의 온기가 그리는 다정과 영원의 이야기.어떠한 만남도 한 사람의 일생에 대어보면 짧은 순간처럼 느껴지곤 한다. 「다정의 고리」는 신의 임무를 받아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와 우연히 천사를 돕게 된 은정의 이야기다. 머리 위 고리를 잃어버려 기억과 임무를 잊어버리게 된 천사. 은정은 그런 천사에게 ‘다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고리를 찾아 나선다. 낯선 인간 세상에서 다정은 인간의 말투를 따라 하고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며 적응해간다. 가까웠던 단짝 친구가 전학을 가 외로웠던 은정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파고드는 다정이 신기하기도, 못마땅하기도 하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지만 세상이 그렇게 선량하고 즐거울 순 없다는 삶의 진실을 은연중에 느끼는 시기이기에.
“여기 즐겁고 행복한 곳 아니야. 사실은 너무 힘들고 아픈 일들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고통을 잊기 위해 즐거움 주는 것들이 잔뜩 만들어진 거야. 그러면 삶이 괴로운 걸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으니까.”
“은정이도? 은정이랑 있으면 다정이 즐거워. 하지만 은정이, 만들어진 거 아냐.”
그런 다정이와 은정이 앞에 나타난 뱀은 둘 사이를 혼란스럽게 하며, 빨리 고리를 찾아 임무를 기억해내라고 다정이를 다그친다. 과연 다정이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이루어야 했던 임무는 무엇일까. 다정이는 고리와 기억을 되찾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기억을 되찾고 임무를 마친 다정이와 은정이는 어떻게 될까.
이번 단행본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단편 「사라 로랜스키의 존엄한 생일」은 인간을 돌보는 인공지능 로봇이 상용화된, 가깝고도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다. 샐리의 예순번째 생일, 신이 나 수다스럽게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해나는 샐리의 인공지능 로봇이다. 어느덧 요리가 완성되고, 가장 그리웠던 요리부터 맛보기 시작한 샐리에게 로봇 해나는 묻는다.
“60살 생일에 죽고 싶다는 너의 뜻. 지금도 변함없는 거야?”
“이 시간 동안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봤는데 실은 그게 잘 안 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후의 내 삶이 상상되지 않아.”
해나는 샐리에게 조금 더 삶을 연명해보자고 설득하지만 샐리는 죽음에 대한 변함없는 뜻을 내비친다. 그녀의 인공지능 로봇으로서 해나는 죽음을 원하는 샐리를 위해 앞으로 자신이 하게 될 일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을 따스하게 설명해준다.
고요히 쌓아온 냘구 작가의 눈부신 단편 세계「다정의 고리」와 「사라 로랜스키의 존엄한 생일」은 천사와 로봇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하는 서로 다른 단편이지만 짧은 만남과 이별을 통해 영원과 순환을 그리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가 받은 것은 은정이 그간 주어온,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따뜻한 감정 ‘사랑’이었다.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것을 주고받은 기억은 앞으로의 무수한 만남 속을 맴돌며 또다른 사랑을 낳을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은 사용자가 없다면 그저 기능을 다한 평범한 기계일 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곁에 머문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로봇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믿고 싶어진다. 짧은 만남과 그것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 삶이, 사실 우리가 모든 것을 잊은 뒤에도, 혹은 사라진 뒤에도 어딘가를 영원히 맴돌고 있을 것이라고.
냘구 작가는 그간 독립적인 작품 활동으로 독보적인 단편 세계를 구축해온 만화가다. 불사신과 흡혈귀의 동거 이야기를 그린 『영원한 샘』(장편)에서도 인간이 아닌 두 존재를 통해 영속성과 유한성이라는 가치를 그리며 그것이 때로는 얼마나 무섭고도 신비로운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평온한 일상에 시나브로 펼쳐지는 낯설고 기묘한 사건들을 특유의 절제된 흑백 그림체로 표현하며 환상적인 기담들을 다수 그려왔다. 그런 냘구 작가가 천사와 로봇, 그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그리는 천사는 단순히 사랑스럽고 선량하지만은 않으며, 마찬가지로 그가 그린 로봇은 차갑고 명령어를 수행하는 존재만은 아니다. 전혀 다른 존재들과의 교류를 그린 이야기는 우리를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가준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주고받은 마음만은 영원히 고리를 돌듯 순환하며 이어지고 있다는, 삶의 진실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놓는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따뜻한 감정, 사랑이야”라는 작품 속 대사처럼 그 진실의 온도 역시 얼마나 따뜻한지, 천사의 날개짓과 기계음의 온기가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