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세계 시민을 위한 국제법 그래픽노블 무질서의 약육강식으로 가득한 세계를 지켜낸 ‘국제법’ 이야기야만의 시대, 국제법은 여전히 유효한가? 국제법의 역설에서 평화의 단서를 찾다!“나는 국제법이 필요 없습니다.”
2026년 1월, 이란 공습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이다. 국제법 위반 및 전쟁범죄 가능성에 대한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지속되던 미국의 군사행동은 임시 휴전이라는 아슬아슬한 대치 속에 ‘잠시’ 멈춰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공격을 강화했고,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울리는 포성도 여전하다. 강대국의 전횡과 전쟁의 야만 앞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국제법이 전쟁을 막고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가? 국제법은 강자의 도구인가, 약자의 무기인가?
힘의 논리가 법을 압도하는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제법마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보라. 히틀러가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트럼프가 2026년 수십 개의 국제기구 탈퇴 결정을 내린 것도 국제법이 지닌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국제법의 가치는 인류가 야만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세계를 지탱해온 보루라는 점에 있다. 국제법은 조문의 나열이 아니라,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오랜 투쟁의 기록이다. 또한 무역 규범에서 기본권 보호, 젠더와 인종,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민의 삶 곳곳에서 작동하는 준칙이자 공통어이다. 국제법의 한계를 직시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폭력의 연쇄를 끊어낼 단서를 찾아내는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텍스트와 그림, 과거와 현재, 윤리와 정치가 교차하는 역사적 파노라마 《국제법의 역사: 살라망카에서 관타나모까지》는 500여 년에 걸친 국제법의 역사를 그래픽노블에 담아낸 역작이다. 법이 종교에 종속되었던 15세기부터 유엔 안보리 개혁 논쟁을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공존과 규율의 질서를 세우려는 국제사회의 치열한 분투를 추적한다. 국제법 학자의 통찰이 역사와 정치, 인류학, 법학 등이 교차하는 세계 질서의 이면을 꿰뚫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수많은 사건과 인물을 입체적으로 되살려낸다. 특히 낙관론자 남편과 회의론자 아내가 관찰자로 등장해 벌이는 논쟁은 이 책의 핵심이다. 부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국제법이 ‘신의 의지’와 ‘국가의 의사’를 지나 ‘보편적 인권과 지구적 협력’이라는 현대적 가치로 이행하는 과정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두 인물의 논쟁은 국제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투영한다. 법을 진보와 문명의 열쇠로 보는 윤리적 관점과 국가 간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보는 정치적 관점이 그것이다. 국제법은 이 두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며 전진해 왔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국제법이 늘 정의의 편에 서지는 않았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저자들은 아프리카의 직선 국경선이나 식민 지배의 정당화 등, 국제법이 강대국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어두운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서문을 쓴 필립 샌즈의 말처럼 “언제나 희망을 위한 자리는 남아” 있다. 국제법은 뼈아픈 한계를 노출하면서도, 끊임없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인권과 평화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 책은 승자들의 각축전 너머, 여성과 노예, 소수민족 등 “나머지 세계”의 존재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여정 역시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다.
왜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는가 - 역사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왜 브라질은 주변 남미 국가들과 달리 포르투갈어를 쓰는가?” 이 질문의 핵심에는 1494년 체결된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해양 강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 한가운데 수직선을 그어 세계를 양분하는 과정에서 대륙의 동쪽 끝 브라질이 포르투갈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몇백 년 전 종이 위에 그어진 선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언어 지도를 결정지은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통해 국제법이 과거의 합의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의 현실과 문화를 규정하는 실체적 힘이자 설계도임을 짚어낸다.
17세기의 주권이 현대의 전쟁을 말하다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선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로 확립된 ‘국가 주권’과 ‘내정불간섭’ 원칙은 오늘날에도 국제 정치의 뜨거운 쟁점이다. 이 책은 근대 주권 개념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이 왜 현재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독재 유지 근거가 되는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과 국제사회의 대응이 왜 법적으로 충돌하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특히 17세기의 ‘폭력의 정당한 독점’으로서의 주권 개념이 현대의 ‘보호책임’ 규범과 충돌하며 빚어내는 긴장은 저자들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이다.
‘작은 섬’ 차고스의 투쟁이 증명한 국제법의 희망 인도양의 작은 섬 ‘차고스 제도’ 이야기는 국제법의 한계와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 영국에 의해 강제로 추방된 주민들의 비극은 강대국의 이해관계 앞에 무력했던 국제법의 실체를 드러내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리셔스 공화국과 차고스 주민들은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해양법재판소를 통해 영국의 점유가 불법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강제권이 없는 ‘의견’일지라도, 국제법이라는 무기를 쥔 작은 나라가 식민 제국의 오만을 굴복시키는 과정은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은 국제법이 늘 정의롭거나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강자를 견제할 수 있는 인류 공통의 약속임을 강조하고 있다.
15~16세기 - 종교적 권위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 지배의 정당화 이 시기 국제법은 신학의 연장선에서 교황의 권위를 빌려 유럽 열강의 정복 전쟁을 정당화했다. 인테르 카에테라 교서와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발견되었거나 발견될 땅의 소유권을 배분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으며, 이는 원주민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분할이었다. 살라망카 학파는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주권 침해에 대한 비례적 대응으로서의 정당한 전쟁론을 펼쳤으나, 이 논리는 역설적으로 식민지화의 길을 열어주었다. 결국 5,600만 명에 달하는 원주민의 사망과 노동력 상실은 노예무역의 원인이 되었다.
[인테르 카에테라 교서/1493,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 바야돌리드 논쟁/1550…]
17~18세기 - 종교적 권위의 퇴장과 주권·자연법 체제의 형성 종교 전쟁의 참혹함 속에 국제법의 근거는 신의 계시에서 인간 이성과 자연법으로 옮겨 갔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교황 중심의 질서를 깨고 국가 주권과 내정불간섭 원칙을 세웠으나, 이는 유럽 국가들만의 특권일 뿐 비유럽 세계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대상으로 남았다. 그로티우스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 자연법과 자유해양론을 펼치며 현대 국제법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성’과 ‘자연’이라는 개념은 강대국이 자국 이익에 맞춰 영토 정복과 바다의 독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다.
[30년 전쟁/1618~48, 베스트팔렌 조약/1648, 해양 자유 논쟁과 영해 개념 정립…]
19세기 - 실증주의의 확립과 제국주의의 법적 정당화 19세기는 법의 근거가 조약과 관습으로 이동하며 국제법이 체계화된 ‘황금기’였으나, 그 이면에는 ‘문명’을 잣대로 한 배타적 논리가 숨어 있었다. 유럽 열강은 국제법학회를 창립하는 등 법을 체계화하면서도, 비유럽 세계를 주권 없는 ‘미개 사회’로 타자화했다. 이러한 논리는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확장을 뒷받침하는 법적 수단이 되었다. 결국 이 시기의 국제법은 학문적 발전과 동시에 강대국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이중적 도구로 작동했다.
[빈회의/1815, 국제법학회 창립/1873, 베를린회의/1885, 제네바 협약/1864…]
20세기 초반 - 국제기구의 탄생과 양차 대전 사이의 좌절 20세기 초 국제법은 전쟁을 법적으로 규율하는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 상설 중재재판소가 탄생하며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은 기존 질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인류는 평화 기구인 국제연맹을 창설하고 ‘전쟁의 불법화’를 선언하는 등 법적 이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일본의 만주 침략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과정에서 국제연맹은 무력화되었다. 이는 법적 규범만으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열강 간의 세력균형이라는 현실 정치적 조건이 필수적임을 보여주었다. 이 교훈은 이후 유엔 체제 설계에 반영된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1899·1907, 베르사유 조약/1919, 국제연맹/1920~30년대, 켈로그-브리앙 조약/1928, 로터스호 사건·윔블던호 사건/1920년대…]
20세기 후반 - 유엔의 탄생과 인권의 도약, 세력균형의 시대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유엔 체제는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국제 질서의 전환을 꾀했다. 대서양 헌장의 평화 구상은 유엔 헌장으로 구체화되었고, 인권이 국가 주권의 영역을 넘어 보편적 가치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세계인권선언과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은 개인의 권리를 국제적 의제로 격상시켰으며, 이는 식민지 해방과 민족자결권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냉전기 국제법은 강대국의 거부권과 강제력 부족이라는 한계 속에서 핵전쟁 방지를 위한 세력균형의 도구로 작동하기도 했다. 결국 인권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현실 정치와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 시대였다.
[대서양 헌장/1941, 유엔 헌장/1945, 세계인권선언/1948, 수에즈 운하 위기/1956, 쿠바 미사일 위기/1962, 니카라과 판결/1986, 여성차별철폐협약/1979, 식민지 해방과 민족자결권…]
1990년~현재 - ‘신세계 질서’의 약속과 좌절 냉전 후 국제법은 협력을 통한 ‘신세계 질서’를 꿈꿨으나, 일극 체제와 새로운 형태의 분쟁 속에 다시 도전받고 있다. 이라크전의 일방주의와 인도적 참사 앞에 낙관론은 무너졌다. 비약적인 제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의 거부권과 의지 부족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등 힘의 논리가 규범을 압도하는 현실 속에서도, 국제법은 기후위기 대응과 ‘보호책임’ 같은 새로운 규범을 통해 야만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걸프전/1991, 세계무역기구WTO 창설/1994, 소말리아·르완다·보스니아 참사/1990년대, 국제형사재판소ICC 설립/1998, 인도적 개입의 권리와 보호 책임, 기후변화협약,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전/200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