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작품마다 다채로운 서사를 써 나가는 『슈퍼 루키』 김영리 작가의 신작!
자책감과 상실감을 딛고,
비로소 진솔히 그리움을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여정 사라지거나, 떠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죽었거나, 죽였거나.
최근 몇 해간 청소년소설에 등장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상실’인 듯하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나와 우리의 ‘존재’를 찾아가게 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곁에 머물렀던 상대가 사라진 뒤 생겨나는 일들, 복원되는 추억 혹은 서로 다른 기억이 예고 없이 주인공에게 드리운다. 메울 수 없는 상처와 그리움은 주인공의 몫이지만, 비슷한 정서적 갈등을 지닌 또 다른 인물이 다가오면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가는 흐름도 눈에 띈다. 공허함과 상실감을 전제하는 것이 지금 청소년소설의 자리라면, 현실의 자리는 어떠할까.
멸시하거나, 배반하거나, 혐오하거나, 거부하거나.
실상은 소설보다 훨씬 더 팍팍하다. 대체로 누군가 ‘곁에 있음’으로 인해 괴롭고 힘든 일상을 맞닥뜨리는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에서 그려내는 ‘부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못하는’ 개개인이 겪는 상실감의 증표일 수 있다. 현실의 청소년은 상실의 자리를 ‘곁’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겨누고 있고, 그래서 이야기를 읽는 동안 ‘떠난 이’와 ‘남은 이’ 양쪽의 사정에 양가감정 느끼듯 자기 처지를 모두 이입하게 된다.
진정한 애도와 안부를 건네기 전에 ‘잊어야 하는’ 당위부터 내세운 그간의 사회 분위기를 차치하고라도, 각자 마음을 돌보는 과정이 갈수록 쉽지 않은 세상이다. 지금, 문학적 은유를 통해 어떤 목소리들이 꾸준히 발화되는 까닭도 이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슈퍼 루키』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49』 『팬이』 등을 펴내며 다채로운 서사를 써 내려간 김영리 작가의 신작 『곰 한 마리가 숲속에 있어』 역시 그 궤를 같이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통한 판타지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야기로,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은호를 따라간다. 작은곰과 은호가 발맞춰 가는 길목마다 보물을 숨겨 놓은 듯 반짝이는 서사를 그려내며 은호의 상실감에 버킷 리스트라는 이름의 희망을 따스히 채운다.
“어느 날, 작은곰이 나를 찾아왔다.”
밤하늘 별자리를 찾아가듯 시작된 은호와 작은곰의 반짝이는 모험! 일곱 살 은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 이런 은호의 비밀을 품어 주었던 아빠는 은호가 기댈 수 있는 쉼터이자 은호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은호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는 은호와 힘을 다해 살아가고자 외삼촌이 있는 지리산으로 홀연히 떠난다.
그로부터 8년 후, 열다섯 살 은호는 산으로 둘러싸인 문 뒤에 여전히 웅크려 있다. 무엇도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니, 세상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중인지도. 아빠와 함께 보았던 밤하늘의 별도, 은호에게만 보였던 그 많던 신비로운 존재들도, 은호는 보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간다. 때때로 엄마 부탁에 못 이겨 별밤산장 블로그를 관리하고, 외삼촌 일손을 돕고,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정도로도 은호에겐 버거운 일상이다.
어느 날, 은호는 오솔길에 곰 발자국으로 의심되는 흔적을 발견하고 다음 날 곰 한 마리를 만난다. 눈앞에 두 발로 서서, 꿀차를 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 작은곰. 이후 작은곰은 시도 때도 없이 은호를 찾아온다. 나무 위에 앉아 은호를 내려다보거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을 친다. 혼자 있고 싶은 은호를 자꾸 귀찮게 하더니만 급기야 종이쪽지 하나를 내민다. 작은곰의 ‘버킷 리스트’가 쓰여 있는데, 이를 은호에게 대신해 달라는 제안이다.
부탁이야? 요구야? 협박이야? 그중 뭐라도 상관없이 ‘NO!’를 외친 은호였지만, 포기 모르는 고집 센 작은곰에게 항복하고 만다. 다섯 개 버킷 리스트만 해 주면 떠나는 거다! 호기롭게 말한 은호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작은곰과 산자락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오직 작은곰을 떼어내려는 작전 때문인데, 이거, 좀 이상하다. 작은곰과 만나면서 은호는 자꾸 웃음이 늘어간다. 작은곰은 왜 은호를 찾아왔을까? 대체 정체가 뭐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선물이고, 힘이고, 희망이 되는…… ‘기억’이 할 수 있는 일 작품 속에는 유혈이 낭자하지도, 욕설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둔탁한 무기나 칼 또한 없다. 모처럼의 ‘순한 맛’ 청소년소설이지만 감동은 더없이 진하다. 은호가 작은곰과 우정을 쌓아 가고 엄마와 진심을 주고받는 과정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읽는 내내 몽글몽글 피어나는 귀여운 궁금증을 안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상대방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던 과거를 지나 “반짝이는 것들이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은호. 캄캄했던 일상에 빛이 드리우면서, 비로소 또 다른 비밀의 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외면해 왔던 은호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자리를 찾아내는 순간, 8년의 시간 끝에 가닿은 따듯한 애도가 독자들에게도 먹먹히 전해질 것이다.
작품 뒤에 실린 에세이스트 이미화의 진솔한 서평은 이야기의 외피를 풍요롭게 감싸고, 모예진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완벽히 구현된 은호와 작은곰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책을 다 읽고 한 번 더 표지를 보아 주기를 권한다. 산자락 곳곳에 숨은 ‘은호의 환상 친구들’을 사랑스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을지 모르는 ‘곰 한 마리’를 찾아보는 마음으로.

“내가 보고 있는 게 꿈이야?”
아빠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과거형이 아니었다. 엄마는 상상이라고 표현하고, 또래 아이들은 거짓말이라고 하는 그것이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런 게 보였어? 혹시 아빠가 출장 가고 나서부터야?”
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걷는 내내 은호의 시선이 힐끔힐끔, 분주하게 움직였다. 너무 보고 싶지만,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니까, 다들 걱정하니까 몰래몰래 그것들을 보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달력을 보고 계절을 짐작했다면, 산에서는 지천으로 핀 꽃과 새로 잎이 돋은 나무가 뿜어내는 공기를 통해 계절이 오가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바깥 기온 또한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다. 해가 머리 위에 오는 한낮이면 햇볕도 바람도 한결 따스했다. 겨울잠 자는 곰이 깨어나는 봄이 성큼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