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더 많고 더 큰 사랑을.“
누군가를 돌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희망을 비추는 이야기“강석희의 시선은 그늘진 자리를 향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아픔을 드러내고 보듬는 손길의 섬세함에 있다.
우리의 상처가 낫지 않을지라도 누군가 녹색 광선 같은 빛을 선사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 오세란(문학평론가) 추천 ◇
『내일의 피크닉』 『꼬리와 파도』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 작가 강석희 신작 장편소설
현직 국어 교사이자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 작가인 강석희의 신작 장편소설 『녹색 광선』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다양한 돌봄의 형태를 담은 앤솔러지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강석희 외 6인)에 수록된 단편 「녹색 광선」의 등장인물들을 데려와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전작 『꼬리와 파도』에서는 학교 내에서 벌어진 폭력의 여러 양상을 섬세하게 다루며 세대를 건넌 단단한 연대를, 『내일의 피크닉』에서 자립 준비 청년이자 특성화고 학생이 기업 현장 실습에서 겪는 사회의 폭력성을 수면 위로 드러내었다. 이번 신작에서는 사회 문제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이어 가면서 사회 시스템의 결여로 장애와 돌봄 노동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장애’와 ‘돌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문학적 서정성을 잘 담아낸 서사로 완성했다.
“1인분의 식사를 소화하는 삶에 도착하면 나는 달라져 있을까?
그렇게 한 다음에야 나는 1인분의 인간이 되는 걸까?”
소설 『녹색 광선』은 섭식 장애를 앓는 주인공 ‘연주’와 지체 장애를 가진 이모 ‘윤재’의 사연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연주는 특목고 입시에 실패한 후 입학한 일반고에서도 내신을 망치고, 헤어진 남자 친구가 퍼뜨린 소문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모두와 거리를 두며 생활한다. 어느 새벽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쓸어 담듯이 삼키고 나면, 어린 시절 원인 불명의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눈앞에 놓인 뿌연 고깃국 국물과 외할아버지가 키우던 토끼 ‘솜이’의 앞니가 겹쳐지며 연주는 음식을 모조리 게워 낸다.
연주는 한때 가까웠으나 지금은 멀어져 버린 이모에게 몇 년 만에 연락한다. 재회한 두 사람은 어떠한 계기로 한 집에서 두 계절을 보내면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의 곁에 머문다. 장애를 가진 둘째 딸을 낳으며 하고 싶었던 일을 그만둬야 했던 할머니. 딸이 섭식 장애 환자라는 걸 알게 된 엄마와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외로운 삶을 지나온 이모. 음식에 대한 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연주. 『녹색 광선』은 장애가 할머니–엄마/이모–연주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삶을 어떻게 관통했는지 섬세하게 드러낸다.
세상의 모든 비참이 내게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나를 즐겁게 하던 것은 금세 나를 괴롭혔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나를 쉽사리 중독시켰다. 나는 내게 자주 실망했다. 사실은 매일. 아니, 매 순간……. 그리고 남은 것은, 씹뱉과 먹토. 자주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24면)
외롭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소설
『녹색 광선』의 주인공 연주는 자신을 오해하고 상처 주는 말을 일삼는 아이들을 겪으며 타인을 믿지 못하게 되고, 학교에서 고요하게 지낸다. 그런 연주에게 생활 트래핑 멤버들이 다가온다. 발등으로 여러 물건을 받아서 사뿐히 내려놓는 연습을 거듭하여 “뚝 떨어지는 기분과 한없이 가라앉는 마음까지 받아 내”는 것을 목표로 모인 혜영, 다해, 정연은 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아이들과는 달리, 다정하면서도 명랑하게 연주의 마음을 두드린다. 한편 연주는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밤이’를 돌보기 위해 건강해지기로 마음먹지만, 회복은 있으나 완치는 없는 병으로 자퇴한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연주의 곁에는 이모와 연주의 반려 돌을 번갈아 돌보는 세 아이가 있다.
평생 이모의 휠체어를 밀던 외할머니의 반대에도 결국 독립을 이룬 이모는 작은 공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일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며 살아간다. 윤재 이모의 집에서 머문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연주는 일주일에 두 번이었던 이모의 정기적인 외출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고통은 경험해야 이해할 수 있기에, 연주는 이모 대신 서 있던 투쟁의 자리에서 비로소 이모가 어떤 세상을 살아온 것인지 깨닫는다. 해가 뜨거나 질 때 운이 좋아야 수평선 너머로 볼 수 있는 ‘녹색 광선’처럼 연주와 이모 윤재,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마주할 미래에도 각자의 녹색 광선이 기다리고 있기를 응원하게 된다.
이지러진 얼굴. 욕을 하는 입. 조롱 가득한 웃음. 사진을 찍는 손. 차가운 렌즈. 그보다 더 싸늘한 눈빛. 경멸의 미간. (…) 내가 이모의 친구들과 온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무인도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 나는 이모가 일주일에 두 번, 어쩌면 매일, 아니 평생을 어떤 외로움 속에 보냈는지 조금이나마 체감했다. (157면)

아파트 공용 현관 앞에서 이모와 나는 잠시 멈춰야 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통로에 페인트를 새로 칠해 놓는 바람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짧고 가는 내 다리로도 오를 수 있는 계단 세 칸을, 이모는 오를 수 없었다. 내게 등을 돌리고 엄마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동안 이모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이모는 앞으로 두 시간 동안 내가 집에서 뭘 먹고 어디에 있으면 되는지, 엄마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만 원 한 장을 쥐여 줬다. 나는 이모가 왜 우리 집에 같이 갈 수 없었는지 생각했다. 엄마가 먹으라고 한 건 손도 대지 않고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크게 휘어진 이모의 척추가 자꾸 아른거렸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길을 이모가 잘 갔을지, 애초에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지 곱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모의 뒷모습을 제대로 본 날이었다.
그때처럼 이모랑 다시 웃고 즐겁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하고 한적한 무장애로(無障礙路)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모가 땅의 기울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 이모와 내가 서로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 곳.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오래도록 조용했다. 불편하고 무거운 고요. 어쩐지 산도 우리와 함께 침묵하는 듯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동물들도 눈에 띄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아 나무도 숲도 정물처럼 멈춰 있었다. 꾸덕한 질감으로 그려낸 유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덥고 찐득한 걸음. 걸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