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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소로야 풍경과 정원 이미지

호아킨 소로야 풍경과 정원
에이치비프레스 | 부모님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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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뮌헨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100년 만에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전시를 통해 소로야를 재조명하며 특히 그의 ‘빛’에 주목했다. “고야와 피카소 사이의 시기, 소로야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고된 사회현실을 다룬 그림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햇살이 가득한 해변과 화사한 정원 그림으로 이름을 높이게 된다. 호아킨 소로야가 그린 지중해의 햇살은 시대를 넘어 독보적이다.”

빛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모네가 “빛의 대가”라며 칭송한 호아킨 소로야. 화가로 활동한 40년 동안 4천 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리며 쉼 없이 일한 소로야는 안타깝게도 그림을 그리다 쓰러졌고, 그 마지막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리고 100년간 깊은 잠에 빠진 듯 스페인 바깥 세계에선 거의 잊혀졌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과 감동이 있는 소로야의 위대한 작품은 어느 때든 환하게 빛났다.

  출판사 리뷰

인생을 사랑한 그 화가의 마지막 걸작.
빛의 화가, 스페인의 거장 호아킨 소로야가 사랑한 풍경과 정원.

2016년 독일 뮌헨 미술관은 “20세기 초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화가” 호아킨 소로야 전시를 열며 이렇게 덧붙여야 했다. “오늘날 놀랍게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들.”
뮌헨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100년 만에 대규모 회고전을 개막한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전시를 통해 소로야를 재조명하며 특히 그의 ‘빛’에 주목했다. “고야와 피카소 사이의 시기, 소로야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고된 사회현실을 다룬 그림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햇살이 가득한 해변과 화사한 정원 그림으로 이름을 높이게 된다. 호아킨 소로야가 그린 지중해의 햇살은 시대를 넘어 독보적이다.”
빛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모네가 “빛의 대가”라며 칭송한 호아킨 소로야. 화가로 활동한 40년 동안 4천 점에 이르는 작품을 그리며 쉼 없이 일한 소로야는 안타깝게도 그림을 그리다 쓰러졌고, 그 마지막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리고 100년간 깊은 잠에 빠진 듯 스페인 바깥 세계에선 거의 잊혀졌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과 감동이 있는 소로야의 위대한 작품은 어느 때든 환하게 빛났다.

바다, 인생, 그리고 정원

2009년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열린 호아킨 소로야 회고전은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미술관인 프라도에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은 전시였다. 이 같은 호아킨 소로야 재조명 열기 속에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집이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켰다. 〈호아킨 소로야 – 바다, 바닷가에서〉(2020년)는 ‘바다와 삶의 풍경’을 테마로 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 세계는 물론 가족에 헌신하고 아내를 사랑한 좋은 사람이자 예술가로서 호아킨 소로야를 한국에 처음 알린 책이다. 회화 작품집으로는 이례적으로 해마다 증쇄를 거듭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이 책에 이어 〈호아킨 소로야 – 인생의 그림〉(2024년)이 출간되었다. 〈인생의 그림〉은 스페인 국립 소로야 미술관의 협력으로 소로야의 증손녀이자 미술사학자인 블랑카 폰스-소로야가 선정하고 해설한 걸작 100여 점을 수록한 아트북이다.
그리고 〈호아킨 소로야 풍경과 정원〉. 이 책은 호아킨 소로야가 사랑으로 그린 ‘그림 정원’이자 화가가 마지막 걸작을 완성해 가는 긴 여정을 눈으로 따르는 여행이다.

내셔널갤러리가 언급했듯, 정원은 바다 풍경과 함께 호아킨 소로야의 작품 세계 중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테마이다. 그가 이젤을 세운 곳은 바닷가 아니면 녹음이 우거진 숲이나 정원이었다. 소로야는 고향 발렌시아는 물론 스페인 각지의 풍경과 정원에 매료되어 눈으로 먼저 그리고 붓을 들어 다시 그렸다.
첫딸 마리아가 결핵을 앓을 때 맑은 공기를 찾아 산속으로 거처를 옮겨 함께 지냈던 소로야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원이 있는 집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11년 마침내 마드리드 외곽에 정원이 딸린 집, 카사 소로야(Casa Sorolla)를 지어 이사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들은 자택 정원 곳곳을 그린 그림들이다. 순수한 기쁨을 위해 그린 이 그림들에 화가는 서명조차 남기지 않았다. 직접 설계하고 공들여 지은 자택과 정원은 그 자체로 소로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소로야의 정원 그림은 그의 말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을 관조하려고 만든 추억 혹은 인상”이다.
이 책 〈호아킨 소로야 풍경과 정원〉은 그가 사랑한 스페인의 아름다운 정원들(세비야의 알카사르, 그라나다의 알람브라와 헤네랄리페)부터 인생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직접 가꾸고 그림으로 남긴 소로야 자택 정원까지 아우른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끝에 이르면 화가가 사랑한 풍경의 표정들이 그의 마지막 걸작으로 이어져 결실을 맺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색채를 사랑한 소로야는 안달루시아와 지중해의 찬란함과 기쁨을 마드리드 자택의 정원에 소중히 간직했다.” 플로렌시오 데 산타아나, 소로야 미술관 전 관장

“저 먼 곳에, 삶의 깊숙한 힘을 바라보고 표현하려 했던 한 화가의 작은 정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래전의 여행자는 여전히 힘을 얻는다.” 김하나 작가, 〈금빛 종소리〉 저자

화가가 사랑한 세 가지 소중한 것 – 가족, 그림, 자연

1910년 소로야는 마드리드에 가족을 위한 집을 짓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다 평생 소중히 여겨 온 세 가지─가족, 일(그림), 자연을 모두 품을 계획이었다. 1905년에 부지를 매입하고 5년 만에 건축가 엔리케 마리아 레푸예스에게 새 집과 작업실 건축을 의뢰했다. 7월 초 새 집터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건축 프로젝트를 이끈 것은 소로야 자신이었다. 그는 집과 작업실, 정원을 설계하고, 틈 나는 대로 그 과정을 감독했다. 그러는 동안 소로야는 <정원에 있는 아내와 딸들>처럼 아름다운 야외 초상화를 그렸고, 사라우츠와 발렌시아 해변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듬해 1월엔 전시와 의뢰받은 초상화 제작을 위해 미국 뉴욕,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그리고 런던과 파리 등지를 여행했다. 11월엔 파리를 다시 방문해 1년 전부터 논의해 온 <스페인 정경> 시리즈 제작 계약에 서명했다. 이 일로 소로야는 너비 70미터, 높이 3.5미터에 달하는 열네 점의 회화를 그려 미국 히스패닉협회 도서관 벽을 프리즈처럼 두를 계획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해 크리스마스 직전에 소로야 가족은 파세오 델 오벨리스코에 위치한 새 집과 작업실로 이사했다. 당시엔 가족들의 거주 공간인 집 앞쪽에 있는 정원 하나만 완성되어 있었다. 소로야는 모두 세 개의 정원을 만들려 했고, 마침내 1917년 마지막 정원을 완성했다.

꿈꿔 온 정원을 완성하기까지 12년, 사랑해 온 풍경을 정원으로 옮겨오다

소로야의 정원은 평화로운 안식처로서 온 집안을 꽃향기와 물 흐르는 소리로 감싸안았다. 그는 세 곳의 정원에 예술가로서 영감을 얻고 감동받은 스페인의 풍경과 정원을 옮겨놓고자 했다. 집 현관 앞에 있는 첫 번째 정원은 세비야 알카사르 궁전의 영향이 뚜렷하다. 이 정원은 소로야의 집을 찾는 누구나 다정하게 맞이하는 환대의 장소다.
첫 번째 정원에 인접한 두 번째 정원은 가장 나중에 완성되었다. 소로야는 설계를 여러 번 바꾸며 심혈을 기울였다. 이 정원을 가로지르는 수로를 따라 낮은 분수가 설치되어 물의 터널을 이루는 모습은 그라나다풍이다. 소로야는 1909년 그러나다를 방문해 처음으로 알람브라 궁전과 도시 풍경, 시에라네바다를 그렸다. 그는 늦가을에 도착해 흐린 날씨와 추운 기온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없어서—“당신이 여기서 나와 함께였다면!”) 고생한 가운데 8일 만에 열네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라나다에서 구입한 세례반과 세면대가 두 번째 정원에 자리잡았다. 이 정원엔 로마와 피렌체 정원을 연구한 소로야의 각별한 노력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세 번째 정원은 작업실과 맞닿아 있어 가장 깊숙한 위치의 정원이다. 이곳은 무엇보다 화가의 고향인 발렌시아와 연결되어 있다. 분수 앞에는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발렌시아에서 흔히 설치하는 퍼걸러가 만들어져 있고 입구 계단은 발렌시아식 타일로 장식되었다.

“이 정원에선 당신이 흙에 발 디딜 일이 없을 테니까요.”
아내 클로틸데를 위한 사랑의 정경

소로야 자택 정원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세라믹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데, 정원 바닥은 아마도 아내 클로틸데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1908년 왕후의 초상화 작업을 위해 세비야 알카사르 궁전에 방문한 소로야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곳이에요. 이 정원에선 당신이 흙에 발을 디딜 일이 없을 테니까요. 바닥이 모두 포장되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답니다. 도금양으로 둘러싸인 타일 분수가 매우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소로야는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곳의 꽃을 아내에게 보내곤 했다. 1918년 3월 <스페인 정경> 작업을 위해 세비야에 머무를 때 꽃이 아직 피어 있지 않다며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세비야가 가장 아름다운 달은 4월이에요. 왕후의 초상화만 아니라면 여기 머무르며 꽃을 그릴 텐데요.” 장미는 소로야가 가장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정원에도, 그의 작품에도 아름답게 남아 있다. 자신이 집 현관 옆에 심어 화사한 꽃을 피운 장미덤불 역시 <소로야 자택의 노랑장미덤불>로 생생히 남겼다.

마지막 걸작에 서명 대신 남긴 빈 의자
고향 발렌시아의 해변처럼 그의 집 정원은 소로야에게 안식처이자 기쁨의 원천인 그림의 주제였다. 이 정원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눈으로 먼저 그려 지은 다음, 실제로 그려졌다고 할 만하다. 해변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선과 뉘앙스로 정원을 캔버스에 옮기며 화가는 진정한 기쁨을 느꼈다. 8년에 걸친 <스페인 정경> 연작 작업을 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소로야에게 의사는 휴식을 권고했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다. 소로야 자택의 정원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스페인 정원의 아름다움과 특질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여행 중 구입한 타일(<정원의 클로틸데>, 1919년)과 분수(<소로야 자택의 분수와 장미>, 1918-1919년) 등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소로야의 가장 마지막 완성작 중 하나인 <소로야 자택의 정원>에 ‘빈 의자’라는 부제를 붙이기도 한다. 햇살과 자연을 즐기는 행복감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이 장면에 즐겨 앉았던 빈 고리버들 의자로 화가는 서명을 대신한 것만 같다.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 ‘정원의 표정’ 수록
“…정원은 그가 살면서 간직해 온 표정들을 안으로 살려낸 공간이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던 기억뿐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힘은 언제나 깊고 강해서, 사라지는 듯싶다가도 살아나고, 또 살려낸다. 그의 시선과 마음이 곳곳에 어려 있던 그 작은 정원에는 그가 평생 주의 깊게 보아 온 풍경과 기억이 살아 있어 방문자에게 고요한 충족감의 형태로 옮아간다. 저 먼 곳에, 삶의 깊숙한 힘을 바라보고 표현하려 했던 한 화가의 작은 정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래전의 여행자는 여전히 힘을 얻는다.”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은 루소와 스미스의 사상을 여러 각도에서 대비하면서 그 전체적인 상을 되살리는 과제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혼트는 지금껏 지성사가들이 발굴한 다양한 논쟁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데, 이러한 지적 맥락을 따라가는 것 역시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 (해제 중에서)

“루소와 스미스의 야심은 분명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으며, 거의 동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작업 또한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저작은 모두 야심 찬 기획의 편린들에 불과하다. 심지어 《국부론》이나 《사회계약론》과 같이 정식으로 출간된 책에 남아 있는 것조차도 말이다. 소실된 체계들을 완전히 되살려내는 일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개요, 의도, 주된 이론적 취지가 무엇이었는지를 복원할 수는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호아킨 소로야
186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고향 발렌시아 해변과 그곳의 사람들, 가족(특히 아내)을 평생 사랑하며 그렸다. 그는 두 살 때 콜레라 대유행으로 양친을 잃고 이모 댁에 입양되었다. 이모부의 직업인 열쇠공 일을 이어받는 대신, 소로야는 그림에 뛰어났다. 그는 10대 후반에 발렌시아 예술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21세에 처음으로 그린 대형 역사화 '1808년 5월 2일'은 스페인 미술전에서 2위에 입상한다. 이듬해 그는 발렌시아 주정부의 지원으로 4년간의 로마 유학을 떠난다. 그는 유학 기간 중 로마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프랑스 파리에선 처음으로 ‘모던 회화’를 경험하게 된다. 파리의 인상주의 미술운동을 만난 것은 소로야의 작품 활동에 전환점이 되었다.20세기 들어 그는 야외로, 자연의 빛을 향해 좀 더 깊이 다가갔다. 그의 팔레트와 브러시는 자연 풍경과 그라나다의 무슬림 정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 앞에서 솜씨를 발휘했다. 그의 집은 마드리드였지만 1년에 한 달 이상은 발렌시아 해변에 머물며 그곳의 강렬한 빛과 너른 수평선에 빠져들었다.소로야는 그림을 천직으로 생각했고, 늘 과로했다. 길이 70미터에 달하는 '스페인의 비전' 연작을 의뢰받아 7년 동안 작업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의 마비를 경험하며 무리했다. 의사의 권고로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는 좋아하는 다른 그림들을 그렸다.1919년 '스페인의 비전'을 완성하고 그는 다시 지중해 해안과 마드리드의 집으로 돌아가 늘 그리워하고 그리고 싶어한 바다와 시에스타, 자신이 손수 가꾼 정원을 때론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그렸다. 소로야는 1920년 자택 정원에서 초상화 작업을 하다 쓰러졌고,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 1923년 세상을 떠났다. 1932년 그의 아내와 가족은 그 집과 정원에 소로야 미술관을 열었다.

  목차

인생의 정원들 (서문)
풍경과 정원 (작품 갤러리)
정원의 표정 (김하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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