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삶을 살아가는 데 주어지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발레 작품을 들어 몸짓으로부터 답을 구하고자 한 생각을 다룬다. 저자 김태희는 죽음, 사랑, 몸, 환상, 예술, 정치, 우아함까지,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일곱 가지 주제를 두고 열여덟 편의 작품을 골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춤’으로 불리는 몸짓을 쓰고 해석하는 기쁨을 담아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골라냈다. 무대에 선 시절부터 문화예술 잡지를 만들고 평론을 쓰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오롯하게 구축한 ‘글쓰기의 몸짓’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장과 함께 그 매혹적인 순간을 담아낸 사진을 엄선해 무대의 감흥을 전한다.죽는다는 것은 결코 상황의 종결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모종의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죽기를 결심한 젊은 연인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읽어내고, 젊은이와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가운데 끊임없이 흔들리다 끝내 소멸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하는 존재를 발견하며, 낭만성이 가득한 지젤에서 죽음 이후에야 펼쳐지는 사랑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 모든 것을 삼켜버린 죽음을, 예술은 기꺼이 건져 올려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몸은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다. 그 움직임은 바라보는 이가 자신의 심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또한 여러 가지 모양새로 하여금 마음먹기에 따라 사랑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정답이 있겠느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은 그 마음을, 감정을 투명하게 비춘다
라 실피드에서 우리에게 낭만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주인공 실피드의 존재다. 아름다움과 욕망의 화신이자 닿을 수 없어 더욱 애타게 만드는 존재, 순수한 사랑과 자유의 영역이자 시와 예술의 원천이 되는 존재. 우리는 그 환상에 사로잡힌 제임스에게서 낭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현실 세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약혼한 상태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결혼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감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을 홀리게 하는 실피드를 확실하게 손에 넣고 싶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피드는 교묘하게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현실과 꿈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잠에 취해 있을 때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색정적인 환상이 깃들어 있다. 시적 갈망과 환상에 취한 정신 상태의 제임스를 붙잡는 건 다만 에피뿐. 제임스와 실피드·에피의 파드트루아가 끝날 무렵 그의 두 눈을 가리는 에피의 손을 놓치지 말았어야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태희
무용평론가. 편집자.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무용이론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마쳤다. 2008년 베를린 탄츠올림프에서 클래식/네오클래식 부문 은상을 받았고, 고등학교 무대에서 ‘불새’를 춤추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글을 쓰기 시작해 월간객석에서 인턴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SPAF 젊은 비평가상으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으로 ‘극장과 춤, 동시대를 움직이는 전략들: 해외 주요 무용단체 17/18 시즌 경향 보고서’(2019)를 냈다. 2018년부터 디자인이끼에서 사람과 사람, 텍스트와 디자인을 잇고 있다. 경기아트센터·국립국악원·국립극장·국립현대미술관·서울문화재단·세종문화회관의 잡지를 만들었고, 국립극단·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예술 기관과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