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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와 우리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부모님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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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우리 시대의 지성, 하버마스를 만나다” 이 사상가는 철학자로서는 누구보다 더 초시간적-보편적인 것을 목표로 삼지만, 공론장의 지성인으로서는 ―그의 모든 개입을 기초로― 나치즘의 후유증으로 인해 독일에 주어진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대응했다.1980년대 이래로 그는 이 두 역할을 명료하게 구분하는 일을 특별히 강조했지만, 양자의 교차 ―거리 두기와 참여하기의 교체,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변증법― 는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그래서 연방공화국의 정신적 지형의 주요한 특징인 이론, 역사, 그리고 기억의 특이한 관계는 하버마스라는 인물에게서 거의 이념형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의 무한히 이어진 성공가도에서, 다수의 독자층은 그의 작품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그들이 하버마스에 반응했던 방식은 철학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무엇보다도 하버마스는 일종의 이념사적인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어쨌든 나는 그의 삶과 저작에 깊이 집중했던 동안에, ‘부정을 통해서(ex negative)’ 나의 세대의 지성적인 윤곽이 더 선명히 보인다고 생각했다.

  출판사 리뷰

시대를 통과한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초상

이 책은 독일의 역사가 필리프 펠슈가 위르겐 하버마스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뒤 하버마스의 일대기를 추적하면서 그 나름으로 하버마스라는 사람의 초상을 그려 보고자 한 책이다. 하버마스와의 첫 만남에서 지은이는 자신이 “롱아일랜드 햄프턴”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다가도, 어느새 자신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방문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이 모든 감상은 “프루스트가 차에 적셔서 먹었던 저 유명한 마들렌처럼, … 갑자기 하나의 전체적 인상으로 녹아든다.” 이 첫 만남에서의 인상은 그가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하버마스의 초상을 그리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가 본 하버마스는 “햄프턴과 굼머스바흐의 혼합”, 곧 “보편적-지역적인 나라”의 시민이자 철학자(Der Philosoph)였다. 그는 이 책에서 하버마스와 그가 살아간 시대를 조명하면서, 하버마스의 일대기를 시대적-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펠슈는 왜 하버마스를 하필 시대 속에서 그리려고 한 걸까? 물론 역사가라는 그의 직업적 배경도 한몫했겠지만, 무엇보다 하버마스가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었을까? 먼저 하버마스는 시대가 낳은 지식인이었다. 45세대로서 “전쟁 이후에 심각한 손상을 입기에는 너무 어리고, 시대적 변환을 완전하게 수용하기에는 충분한 나이여서, 최상의 출발 조건에 놓여” 있었던 하버마스는 전후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학문을 배웠고, 그 경험이 그를 ‘하버마스’로 만들었다. 그리고 하버마스는 시대를 만들어 간 지식인이기도 하다. 공적 지식인으로서 하버마스는 직접 독일의 공론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시대가 자신을 찾지 않을 때는 뒤로 물러났지만, 시대가 필요로 할 때는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이처럼 “언제나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곳에” 있었던 하버마스의 시대적 위상은 그가 슈타른베르크로 이사했을 때,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았다는 것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펠슈는 자신이 역사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하버마스이기 때문에, 시대라는 물감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야누스, 하버마스와 그의 두 역할 구분

펠슈는 이 책에서 하버마스가 독일 지성계와 공론장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사고 활동의 전문적 관리자”로서 하버마스는 “하버마스 자신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냐는 비판에 시달리며 “순수한 이성의 관료주의자”라는 비아냥에 시달릴 정도로 참고문헌에 파묻혔다. 그로 인해 그는 “스콜라주의의 아이콘”이자 “하나의 ‘등록상표’”가 되었다. 반면 공적 지식인으로서 하버마스는 “일반적으로 세계를 친구와 적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랄한 판단과 과감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사소통 실천에서는 마치 ‘슈미트주의자’처럼 행동한다.” 이 같은 역할 구분은 하버마스를 “연방공화국의 헤겔”이자 “팝스타”로 만들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 이러한 역할 구분은 모순된 듯하다. 그러나 펠슈가 보기에는, “서로 다른 언어 행위들 사이에 범주적 구별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서로 다른 타당성 요구들과 결부되어 있다면, … 그의 비판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거기에는 아무런 수행적 모순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강력한 공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양면적인 모습은 우리에게 두 얼굴의 신으로 유명한 야누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하버마스는 왜 이러한 역할 구분을 해야 했을까? 그것은 “계몽에 역행하는 독일”에서 “보편적 이성의 규범들이 관철되게 하며, 동료 시민들을 민주주의자로 교육”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에서 디지털화된 공론장을 “반쪽짜리 공론장”이라고 비판하면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전문화된 인력”과 “전문적인 수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성계로 유입되는 정보와 공론장으로 나오는 정보에는 필터링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야누스가 로마에서 문을 수호하는 신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하버마스가 이와 같이 “문지기”와 “수문”의 역할을 역설한 것을 고려할 때, 하버마스의 이러한 역할 구분과 두 얼굴은 의미심장하다. 즉 하버마스는 독일연방공화국의 야누스이길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에 따르면, 이 독일연방공화국의 야누스를 “우회하여 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유의 문지기에게 이보다 더한 극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좌파의 언더독에서 국가철학자로, 하버마스 또는 독일 논쟁 지형의 변화

고대 로마에서 야누스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로마가 현재 전쟁 중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그리고 이 문은 닫혀 있을 때보다는 열려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것은 하버마스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자신을 좌파의 언더독”이라고 여겼던 하버마스는 “탁월한 논쟁가로서 서독 공론장의 무대 위에 등장”한 이래로 거의 “모든 공적 논쟁에” 참여했다. 그뿐 아니라 하버마스는 이 논쟁의 장을 자신의 학문 분과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전선을 독일 공론장 전역으로 확대하여, 역사라는 학문 영역에서도 논쟁을 “일으켰고, 또 승리했다.” 지은이에 따르면, 하버마스는 이 논쟁에서 “거의 혼자서 나라 전체의 정치적 문화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거기에 자신의 도장을 찍어” 놓았다. 그리고 이처럼 공론장의 최전선에 서서 싸우던 하버마스는 어느새 “국가철학자”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논쟁의 승리자였던 그가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한 탓인지, “과거에 항상 시대정신에 대한 자신의 감각에 의지할 수 있었던 그는 … 독일 여론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분명하게도, 변화한 것은 독일의 여론이나 논쟁의 지형만이 아니다. 과거에 자신은 “유럽 추종자”가 아니라고 외쳤던 이 사상가는, 어느새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인 연합이 필요”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자신이 한평생 투쟁을 벌여 왔던 “구 연방공화국과 화해”하고 “구 연방공화국의 화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독일연방 수상의 ‘속전속결의 정치’를 비판”하고 “공적인 숙고의 행위”를 강조했던 그가, 숙고라는 자신의 특유한 사고로 인해, 결국 시대에 따라잡히고 말았던 것일까? 그와 시대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서 제논이 틀렸음을 증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대에 따라잡혔을지라도, “시대를 초월한 하버마스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 곁에 놓여 있다. 그것은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를 향해 던져진 질문이다. 이 책은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만든다. 하버마스를 따르고자 하든, 넘어서고자 하든, 아니면 조심스레 거리를 두고자 하든, 우리는 하버마스라는 관문을 우회할 수 없다.

나는 하버마스가 더 냉정하고, 까다롭고, 고고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대화 도중에 그가 다리를 꼰 채 소파 깊숙이 기대어 앉아서, 그의 왼쪽 운동화는 거의 눈높이까지 올라왔다. 그때 그가 담화에서 내뿜은 카리스마를 나는 그의 저작이나 공식 석상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보다 앞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경험을 했었다. 순수한 이성의 관료로 오해되는 하버마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일화에서 자신이 세심하고, 관대하며, 재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입증한다.

하버마스는 지나칠 정도의 참고문헌 인용 때문에 훗날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바로 그것 덕분에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것은 하버마스의 영향사에서 아이러니한 반전 포인트 중 하나에 속한다. 1960년대 중반,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주어캄프의 편집인 카를 마르쿠스 미헬에게 “매우 불투명해진 사회”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는 “단지 어중간하게 논증된 의견들”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썼다. “아마도 현재의 어려운 상황이 요구하는 것은 과거의 지성인들 대신에 ‘지성인이면서도’ 연구자인 사람, 말하자면 하버마스 같은 사람의 등장이다.”

겸양의 대가답게 하버마스는 우리의 만남에서 [자신이] 특별한, 심지어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라는 혐의를 벗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평생 무려 11번의 교수 초빙을 받았다는 경력을 어떤 개인적인 성취가 아니라 1960년대의 공격적 교육정책 속에서 이루어진 대학의 폭발적 성장 탓으로 돌리려 했다. 그가 막 교수 자격 논문을 마쳤을 때는 누구라도 “초빙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언제나 알맞은 때에 알맞은 곳에 있었다는 인상, 즉 그의 생애시간과 세계시간 간의 예정된 조화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필리프 펠슈
1972년 독일 괴팅겐에서 태어났다. 프라이부르크, 쾰른, 볼로냐, 베를린대학교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였고, 2002년에서 2005년까지 베를린에 있는 막스플랑크과학사연구소, 2005년에서 2007년까지는 빈에 있는 국제문화과학연구센터에서 연구비를 받았다. 2006년에 취리히대학교에서 『19세기의 생리학적 알프스 탐사 여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07년에는 인스부르크에서 인간이 알프스와 같은 큰 산에 대해 느끼는 심오한 열정과 경외심을 여러 예술 매체로 표현하고 분석하는 예술 전시회(“산, 이해할 수 없는 열정”)를 기획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과학 연구 분과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스위스 국립연구재단의 연구비를 받았다. 2011년에서 2017년까지는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문화과학과 산하 인문학사 전공 초빙교수였다. 2018년에는 퇴임한 토마스 마코 교수의 뒤를 이어서 훔볼트대학교 문화과학과의 정식 교수가 되었다. 그는 학창 시절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보다는 미셸 푸코와 니클라스 루만의 책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지식과 학문의 세계를 생생한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대중에게 친숙하게 접근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저술 방식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이론의 긴 여름, 반역의 역사, 1960-1990』에서 그는 20세기 후반에 ‘이론’이 가졌던 혁명적 의의를 메르베출판사의 역사를 통해서 문화사적으로 분석하였다. 또 그는 『어떻게 니체는 추위에서 벗어났는가. 구조의 역사』에서 조르조 콜리와 마치노 몬티나리의 니체 전집 편집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리면서, 당시까지 거의 무명이었던 두 이탈리아 학자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했던 니체 해석을 둘러싼 분분한 논쟁에 개입하는 과정을 조명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하버마스와 우리』 역시 독일어 원서로 200쪽이 안 되는 짧은 분량 속에서 하버마스의 정교한 이론 체계와 공공적 지식인으로서의 활발한 현실 개입을 독일의 정치·문화·역사를 배경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취리히신문』의 서평은 이 책을 하버마스의 “탁월한 전기”이자 더 나아가 “인문학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행운”이라고 평했다.

  목차

◆ 슈타른베르크에서의 어느 오후
◆ 전도된 세계에서
◆ 가해자와 피해자
◆ 심오함과의 작별
◆ 현재 의식
◆ 중심이 무너진다
◆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뭇매 맞기
◆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로켓과학
◆ 우리가 가정해야만 하는 것
◆ 말하기의 결함
◆ 섬뜩한 [분위기의] 독일
◆ 의미상실의 이론
◆ 꼭 그렇게 써야 했나요?
◆ 반계몽의 분류학
◆ 거리 두기와 용기
◆ 나는 고발한다
◆ 미래로부터의 귀환
◆ 역사와 기억
◆ 포스트 민족적 자각의 시간
◆ 세계 내부 정치의 우선성
◆ 전쟁에 대하여
◆ 보편적인 지역의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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